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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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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가을을 본다


BY 들꽃편지 2001-11-04

아주 적막하다.
아주 조용하다.
아주 자유롭다.

쉬는날이다.
토요일이다.
약속도 없다.

개 한마리와
내가 늘어지게 잤다.
딸아이는 미술 외우러가고
아들아이는 게임을 한다.

오후엔 멀건이(개 별명)를 데리고
원숭이를(나무를 잘 타서 붙혀진 아들아이의 별명)데리고
밖엘 나갔다.
말라버린 나뭇잎을 밟으니 바작바작 소리가 울린다.
바람에 떨어지는 가랑잎을 그저 바라다 보았고,
고스란히 머금은 황금빛 은행잎도 그저 바라다 보았다.
일시에 증발하는 만추의 가을도
그저...바라다 봄이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내 마음을 편케해 줄 그 무엇을 만추의 가을에게 찾으려 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늦 가을
늦은 오후
늦은 명상록들....

쉽지 않다.
나를 바꾸기가
예전에 나를 "올 해는 바꿀거야" 했었는데
난 다시 예전의 나로 앉아있다.
나를 밀어내고 나를 조금 틀어버리려 했었다.
나의 믿음에서 벗어나려는 반항 같은거였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일뿐 너가 아니고 그가 아니였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히지 않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자유와 공존으로...

친구들이 비어있는 시간이다.
토요일이고
모임이 있는 날이다.
난 멀어서 귀잖아서 게을러서 너무 늦을 것 같아
집에 있다.

친구들이 없어도 난 컴에 들어와 글을 쓰고 읽고
재미있게 놀고 있다.
음악도 들고 시도 읽고 수필도 읽고...

가슴이 뛰고 있다.
작은 기쁨도 있다.
분꽃은 여전히 자잘하게 피어나고
가을은 너덜너덜 떨어져 있고
시간은 물처럼 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시간은 짧다,
떨어지는 낙엽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더 짧다.
떨어지는 가을을 기쁨으로 이 순간 맛보아야 한다.
그것이 가난하든 부자든
사랑을 하든 이별을 하든
슬픔에 눈물을 흘려도 기쁨에 웃음을 보여도
우리가 낙하하는 가을을 바라볼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다.

만추의 가을날 오후... 들꽃편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