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왔다.
계절이 바뀔 때 오는 비는 꼭 커튼 같다. 가을과 겨울 사이의 풍경을 장막 뒤에 준비해 두고는 비로 가리고서는 내보이는...
비가 왔으니 이제 가을이 지나갔다.
오실 때가 되었는데... 일요일이니 성당에 들렀다가 커피 마시자며 오실텐데...
내게는 언니라기 보다는 어머니같은 친구가 계신다. 가게에 자주 오시는 손님으로 지내다가 이제는 나이차를 잊고 수다를 떠는 그런 친구사이가 되었다. 서로 아픈 것 같지만 아픈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애써 묻지 않고 그렇게 보내다가 닮은 적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장사익의 '찔레꽃"도 좋아하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고 있던 날, 그 분이 서점에서 사오신 책을 보여주는데 같은 책이고, 어찌보면 철딱서니 없는 것 같은(?) 소녀적 취향까지 같다. 예순쯤 되셨지만 아직도 시험치는 강의실을 ?는 꿈을 꾸시는 소녀(?)
지난 주에 우리는 전화번호도 주고 받고 서로의 얘기도 조금했다. 남들이 보면 우습지도 않겠지만 우리는 아마 상처받고 아팠던 일이 많아선지 맘을 주는 게 힘들다. 누군가와 친하려면 우선 나를 내보여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 시대에 남보다 더 배우고 전문직이었건만 잘못된 인연으로 해서 상처받고 지금도 자유롭진 않다. 그러나 그 영혼은...
오늘은 중국에서 온 편지를 보여 주셨다. 공부하시는 수사님의 글인데 어쩌면 그리도 맑고 향기로운 글을 쓰시는지...
좋은 글이 오면 보여 주시고 서점에 들렀다가 '책갈피'도 사주신다. 난 황송하게 받기만하고 커피만 드리는데 기어이 차값도 던지고 가신다.
가끔 남자복은 없어도 여복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그 생각이 부쩍 더 난다.
향기가 나는 오래된(?) 나의 친구, 감히 친구라 부르기에 연세가 그래도.
잠시 있다가 가시는데도 그 향기가 밤까지 남는다. 나도 그런 향기를 지녔으면...
p.s: 무척 쓰고 싶은 말이 많다가도 모니터를 보면서 글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글이 딸린다고 해야하나... 친구보다 내가 더 올드한가... 친구의 향기를 전하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