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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BY 愛道 2003-07-24

어제 낮에 좀 멀리 사는 지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서울시내가 아니었던 터라, 꽤 긴 시외버스 코스는 나름대로 즐거웠습니다. -나는 버스를 지하철보다 열 다섯배쯤 좋아한다- 빗방울이 간간히 떨어졌고, 멀리 산들이 싱그럽게 푸르른데다 낯설기까지 했으니까요.
종점에서 두 정거장 쯤 왔을 때,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 몇이 내리고 타고를 했지요.
버스문이 막 닫히려고 할 때 뒷문으로 누군가 뛰어오르는 것이었는데 등에는 커다란 이불 보따리를 짊어진 참으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노숙자였습니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뛰어든 탓도 있겠지만 운전사가 내리라는 투로 문사이에 끼인 몸-몸과 이불보따리 사이에 문이 끼었음-을 한참 보고만 있었습니다.
내릴 기미가 안보이자 문을 조금 더 열어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는 지친듯이 젊은 여자가 앉아 있는 2인용 의자에 가서 털썩 앉았습니다.  여자는 기겁을 해서 벌떡 일어나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두꺼운 겨울점퍼는 때에 절어 반질반질했고, 수염은 아무렇게나 자라있었으며 비에 젖은 머리칼은 말할 수 없이 지저분했습니다.
잠시 후 버스 안에 참을 수 없이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앞 뒤의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멀리 뒷자리로 옮겨갔고 개중에는 내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가 앉은 의자와 나란한 옆 의자에 앉아있던 나도 자리를 옮길까, 아니면 내릴까를 망설였습니다.
냄새는 너무나 지독했고, 정말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얌통머리없이 고개 돌리는 짓이나 코를 쥐어싸는 일은 안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는데 여하간 살면서 가장 지독한 냄새였다고 할까요?
결국 나는 콧등을 자주 만졌고, 급기야는 재채기를 해대기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앞에 앉았던 뚱뚱한 남자가 운전사에게 항의를 했고 기사아저씨는 그 노숙자에게 다음정거장에서 내리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 남자가 처음으로 예 했습니다.
몸이 문에 끼었을 때조차 아뭇소리 없이 몸이 끼인 채로 시체처럼 있던 남자였습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그는 내릴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
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는 서둘러 이불보따리를 들고 내렸습니다.
빗속에서 멀건히 서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앉아있던 자리를 반사적으로 쳐다봤습니다.
혹 무엇인가 잔뜩 악취나는 것을 묻혀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그 남자가 앉아있던 자리는 말짱해 보였습니다. 버스안은 가득 견딜수 없는 악취가 차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창문을 열었고,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연인인듯 한 커플이 버스를 탔고, 그 남자가 앉았던 자리에는 예쁘고 발랄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앉았고, 그 옆에 남자가 앉았습니다. 그들은 밝은 얼굴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꾸만 그 둘을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아무말 없이 빗방울 떨어지는 거리로 내려서던 그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여졌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고, 보지 못하는 것들은 때로 말 할 수 없는 편안함이기도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