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옵니다.
사방으로 뚤려있는 하수구마져 흘러가는 빗물을 미쳐 감당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 물장구 칠 만큼 빗물을 담아둡니다.
빗소리만으로도 빗줄기가 상상이 될만큼 퍼 부어대는 이 빗속에서
마음놓고 낙수물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안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짓다 만 것 같은 그 4층집 다세대 맨 꼭대기가 우리의 거처였지요.
그 집은 비가오기만 하면 특별히 새는 곳은 없었는데도
덧문이 없는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은 아들놈 방을 제 방 마냥 널부러지곤해
장마철 내내 포송한 이불 한번 덮어보질 못했습니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두 개인 방 천장과 벽은
그해 여름 빗물의 행로를 확연하게 그려놓고
겨울이 지나 다음해 또 다시 장마를 맞이하기까지
세월의 빛으로 차등있는 색으로 변해 갔지요.
그곳에서 7년을 보냈습니다.
빠져나오지 못한 내 생활도 어지간 했지만
불평한번 하지 않았던 아들녀석도 어지간 했습니다.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지요.
번듯한 주택의 차고를 개조해서 방을 만든곳이었는데
그곳에서 6개월을 살면서 장마철을 맞이했지요.
지대가 높은 곳이라 물들염려는 안했는데
물이 역류가돼 집안으로 물이 넘쳐 들어와
집안의 물을 바가지로 퍼내야했습니다.
방또한 사방에서 물이 떨어져
21세기 흥부네 집을 연출했지요.
9시 뉴스 시간에 보도되는 물난리 화면을 바라보며
물을 퍼내야 했던 심정은 참...
알바를 하던 아들녀석은 빗줄기가 굵어질라치면 어느새 나타나
집안 곳곳을 살펴보곤 했습니다.
작년 8월 말 이집으로 이사왔습니다.
이사온후 얼마동안은 비가 오기만 하면
새는 곳이 없는지 살피는게 일상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새는 곳이 없음을 알게 되고난 후로는
제법 내리는 빗소리를 즐기는 감사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장마철을 비켜 이사왔었기에
이사온지 처음으로 이집에서 장마비를 만났습니다.
빗소리가 굵어지길래
땅위에서 딱 두계단 내려오는 반 지하방 쪽문을 열고
의심 스런 눈초리로 밖을 내다 봤습니다.
봄날 내내 아카시아 향을 뿜어주던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하수구 주위를 물살을 따라 맴맴 돕니다.
등허리에 떨어지는 빗자국도 즐거움으로
빗자루를 들어 이끼낀 앞마당 나뭇잎을 쓸어냅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에 다시 한번 문을 열어봅니다.
짜식 자~ㄹ 내려 갑니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낭만으로 들을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제 갈길 따라 하수구로 흘러가는 빗물이 기특합니다.
장대비로 이끼낀 앞마당을 청소할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비가오니 자연으로 세차가 되니 게으른 저에게는 보너스 같습니다.
군대간 아들녀석에게
비오는날 걱정거리를 덜어 주게 되어 더욱더 감사합니다.
이 장마철
모든 분들이 피해 보지 않고
나와 같이 빗소리를 감상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