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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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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화교실


BY 마음자리 2003-07-17

"아침에 심었다가 저녁에 따먹을 수 있는 잣이요~~!!!"
소년은 새로 부임해온 사또가 있는 현청 앞 길에서 사또가 들릴만큼 큰 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저 놈이 왠 놈이이냐..? 저 놈을 잡아 오너라~"
소년은 사또 앞에 꿇어 엎드렸다.

"네 이놈!! 어찌 그런 해괴한 말을 퍼뜨리고 다니느냐~?"
"사또~ 사실이옵니다. 제 집에 가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네 목을 걸 수 있으렸다?"
"네..."

국민학교 3학년, 새로운 학교로 전학간 지 얼마 안되, 남도극장에 문화교실을 관람하러 간다는 말을 들었다.
영화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로서야 당연히 반가운 일.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익아...돈이 없다. 우짜노...?"
"20원이 없어?"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웠었나보다. 그런 형편을 알길 없는 나는 하루내내 입 불퉁하게 다니다가...그 다음 날, 싸주는 도시락도 남겨두고 학교로 갔다.

친구들은 처음으로 가는 문화교실에 들떠서 다들 재잘재잘 자기가 영화본 이야기들을 해대고...주눅든 나는 쪼그라든 마음으로 부럽게 그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셋째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교실 뒤에서 친구가 날 불렀다. 돌아보니 교실 뒷문에 큰누나가 내 도시락을 든 채 날 보고 환하게 웃으며 나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규익아...여기 20원. 도시락 와 안가져갔노?"
"돈 어데서 났노...?"
"몰라도 된다. 엄마가 구해서 갔다 주라하더라."
"......"
"여기 도시락 잘 먹고 영화 재미있게 보고 온나~ 갔다와서 이야기 해도고..."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목에 걸렸지만 얼른 선생님께 그 돈을 드렸다. 쪼그라든 가슴을 폈다. 선생님도 눈치채셨는지 빙긋 웃는 듯 했다.

전설따라 삼천리. 세 이야기가 연작으로 구성된 영화였는데...지금은 그 중 하나만 기억이 난다.


소년을 따라간 사또가 다다른 집은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집. 그 집 마당에 성큼 들어선 사또는 그 소년의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소년이 태어나기 전...지체 높은 양반가 신랑의 밥상을 들고 들어오던 그 새댁이 삐끗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고, 신랑 앞에 밥상을 내동댕이 친 그 소년의 어머니, 그날로 소박을 맞았다.뱃속에는 그 소년을 잉태한 채...

그 소년이 자라서 그 비밀을 알고...새로 부임해 오는 사또가 아버지란 사실을 안 그 소년이 그 서슬퍼런 사또 아버지를 어머니와 만나게하기 위해 지어낸 꾀...

"아침에 심었다가 저녁에 따먹을 수 있는 잣이요~~!!!"

영화는 해피엔드로 끝맺었지만...나는 그 날의 복잡했던 설움과 그 영화 속 소년의 절박함이 어울어져서 그랬는지...눈물이 방울 방울 맺혔다가 떨어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걸 본 친구들이 3학년 내내 나를 울보라고 놀렸지만...이상하게 나는 부끄럽거나 화나지 않았었다.

그보다는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나는 그 사또를 불러올 수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떤 꾀로...? 이런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