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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터(21)...노인과 손주


BY 동해바다 2003-07-12

남부지방에 폭우를 동반한 장마비가 극심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작년에 겪었던 루사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있는 이곳에 또
피해를 더할까 싶어 걱정이 된다.

성난 하늘이 시커먼 구름을 앞세우고 방금이라도 쏟아 부을것 같다.

그녀의 일터에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바지를 사고 나가는 뒷모습을 볼때마다 안스러워 보였는데 오후 무렵
낯익은 할머니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며 가게안으로 삐죽 들어오신다.
뒤이서 학생과 할아버지도 함께...

"어머나! 안녕하세요.  이번엔 온식구 다 오셨네요."

"이구~~ 힘들어라."

들어오자 마자 간이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할머니에게 먼저 시원한 물을
한잔 건네 드렸다.

뒤에 들어온 학생에게

"오늘도 아파서 병원온거니?"

"네...."

"자꾸 그렇게 아파서 어떡하니? 이번엔 어디가 아픈거야?"

"위염이래요."

"신경성인가 보구나.  시험때문에..."

대학입시를 앞둔 이 학생은 이웃동네인 탄광촌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두어번 그녀의 가게에 찾아와 옷을 사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시내에 있는 큰병원으로 진료차 들린다고 말을 했었다.

지난 추운겨울 처음 찾아와서 할머니는 그녀에게 시키지도 않은 말을
술술 풀어 놓았다.

"애비는 죽고 에미는 집나가고 내가 이것하나 키우고 있는데 자꾸
 아픈겨..."

눈시울을 적시면서 생전 모르는 낯선 그녀에게 말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반듯하게 자란듯 공손하면서 도회지의 아이처럼 준수한 외모의 학생이었다.

"내가 몸이 성해야 하는디 성치 못해서 큰일이지유."

두번째 걸음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왔는데 그분 역시 연로하셔서 무척
힘들어 보였다.
좀 깎아 달라면서 주머니 쌈짓돈 꺼내듯 꺼내 쭈글쭈글한 손으로 하나하나
세어 주시던 분들이었다..

오늘은...

"살건 없는데요. 그냥 들렸어요...구경도 할 겸.."
말하는 학생의 얼굴이 홀쭉해 보였다.

"힘든가 보네.  어쨌든 열심히 해서 시험 잘 치뤄.."

자식같은 아이에게 등을 토닥이면서 

"그만 아파야지 어떡하니..할머니 할아버지 신경쓰이시겠네.."

"네...."

일어서는 할머니는

"그냥 가서 어떡헌대유..."

"아이 괜찮아요. 할머니...안녕히 가세요.."

가게 안을 왔다갔다 하시던 할아버지와 함께 세식구는 시장 본 검은
봉지들을 한아름 들고 가게를 나선다.

축 처진 모습의 노부부와 학생의 모습을 모퉁이를 돌아 꺾어질 때까지
쳐다보다 들어오는 그녀의 마음에 잠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요즘 부모없이 내버려진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늘어나는 청소년 비행과
폭력들..
아직 나이는 덜 찼지만 몸은 어른만한 아이들이 떼지어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되면
그녀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피하게 된다.
험악해진 세상 탓이겠지..

서너번 이 가족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래도 자신의 본분에 맞게
공부하면서 늙으신 조부모를 잘 공양하는 학생이 기특해 보인다는 것이였다.

'손주녀석...내 손주지만 정말 착해요..'하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과연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손님이기에  그 가정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해 본다.

몇달 앞으로 다가올 입시에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
할머니 할아버지의 입가에 함박웃음을 띄워주게 할 학생에게도 건강함을
덧붙여 빌어 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