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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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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저지른 일은?


BY seon004 2001-01-10

내 나이 이제 삼십의 중반을 넘어섰다.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라고,
아직은 언니 소리 들어도 밀리지 않는다는
나름의 자부심 아닌 오기도 있다.
그런데 오늘 그 자부심 아닌 오기가 깡그리 무너져 내렸다.
눈사람이 한낮의 열기를 못견뎌내고 무너지듯이...

모처럼의 한가한 오후!
난 남편과 멋진 데이트를 간만에 하자며
이곳 번화가의 역으로 갔다.
젊음을 그래도 느끼고파 젊은 언니 오빠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Go.Go.

그치만 어디에도 우리들의 자리는 없었다.
밀려드는 인파에서 우리의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다.
입구조차 자신있게 들어서지 못하고
길잃은 어린양이 되어 상호만 빙빙 돌기를 몇차례...
오메! 우리 나이가 벌써 그렇게 많았나.
불쌍한 나그네 들어가 엉덩이 들이 밀 공간이 없다니...
그래도 오기로 가보자는 남편과 함께 한곳을 공략.

앞에서 정중히 인사하는 오빠의 시선을 피하고(물더럽힌다는 소리들을까봐서)
쑥 들어가 앉을 자리를 찾는데 이번엔 더 쌩쌩한 오빠가
자리가 없으니 이곳 임시의자에 앉아서 기다려달란다. 까짓것 ?아내지만 않는다면 기둘리지 뭐.
오고가는 이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입구의 한귀퉁이
작은 의자에 떨고 있는 초로의 아지매,아저씨.

자리가 났다는 반가운 소리에 얼른 일어나는데
우리보다 훨씬 멋있고 젊고 말그대로 쭈쭈빵빵 울트라캡숑인 이쁜 연인들에게 우리의 자리는 양보되고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
슬슬 열이 끓어 오르는데 그래도 삭이면서
'여긴 유명해서 손님이 많은가부다.' 하며 없는 애교까지 떨어가며
나보다 성질 더러운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쓰기를 한참.

얼마의 시간후 자리배정을 받아 가보니
기야말로 끄트머리 누군가의 시선을 받기도 어려운 곳,
절대 우리 행색을 보고 웃을 수 도 없는 사각의 끝,
우린 그곳으로 초라함을 감추며 가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메뉴판 전달.
여기서 또 한번의 어려움.
메뉴판의 이름을 전혀 알지 못하겠다.
이해되는 이름은 없고 오르가즘이니, 정력의 근원이니, 옮기기조차
낯부끄러운 이름으로 죄다 도배가 되어있는것이 아닌가.
에구 인생사 서럽다.

가격표시도 절약의 시대인지 한마디로 간단명료하다.
<5.>,<8.5>,<9.>... 5.000원,8.500원,9.000원이란 소리다.
짧아서 좋다.

그래도 제일 알아듣기 쉬운 양송이 스파게티를 시키고
시원한 맥주를 달라하니 병인지,뭐인지를 또 묻는다.
웨이터의 눈마주침도 겁이나 알아서 달라고만 했다.
입구를 감싼 냅킨의 작은 병 맥주가 도착하고 남편은 오프너를 찾다
웨이터를 부를 용기도 내지 못하곤 라이터를 이용해 힘들게 딴다.
그때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난,
"그건 손으로 가볍게 돌려서 따는거야. 술먹는 사람이 그런것도 모르나" 하며 자랑스러움의 거들먹거림을 했다.
난 Tv에서 본 가락이 있으니까...

이렇게 색다른 음식을 먹어봄이 힘들어서야
다시 또 오겠는가?
젊음도 좋지만 겁이 덜컥 난다.
편안집에서 해장국에 밥을 말아 먹는게
값싸고,
배 부르고,
본전도 뽑는거고,
그리고 먹은 것 같은 포만감까지...

울매나 폼을 잡고 긴장을 했는지
지금도 어깨며,허리며 다 아프다.

예전의 나와 남편도 이런곳이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낯간지럽고 쑥스러워 다신 못올것 같다.

이럼 영원히 국밥집만 다닐텐데...
그래두 난 뜨뜻한 국물이 젤루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