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적정 노인 기준 연령 높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51

적과의 동침 - 며느리 시집살이 -


BY 박 라일락 2003-07-07

 

 

 

 시어머니와 며느리 공존!
 그리고 갈등!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현실 아닌 현실 아닌가 싶다
 그 것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
 두 여인네가 사랑이라는 묘한 갈등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할까..
 
 시어머니라는 입장에서 말하더라.
 평생을 희생해서 애지중지 키운 내 자식인데 네(며느리)가 들어와서 랑
 감히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를 불편케 하고
 내 자리를 넘보다 못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해?
 괘심하고 억울하여라.
 
 며느리 입장에서 말더라.
 쓸데없이 이것저것 웬 간섭이야...
 주는 밥이나 먹고 자식들 눈치나 살살 보면서 살 것이지..
 당신께서 낳으셨다고 평생 자기 것으로 착각을 해?
 장가보내는 책임 완수했으면 뒤 자리로 물러앉도록 하시지..
 원 참 '시'자라는 글자 시금치만 봐도 치가 떨려서..
 
 너무나 거리가 먼 서로의 생각으로 한치의 양보가 없으면 갈등은 빚어지고..
 어디 꼭 총칼을 뽑아야 전쟁이겠는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비수가 더 무서운 무기가 아닌가 싶다.
 시어머니는 예전에 자신이 겪었던 과거는 꺙그리 잊어버리고.
 자식이란 민들레 홀씨되어 날라 간다는 것을 망각한 체 말이다...

 또한 며느리 생각은 남녀가 독립가정을 일구어 살면서
 자식들의 결정체를 인정받는다는 생각일 뿐
 어른들의 충고는 간섭으로 받아 들여지면서
 무조건 시집식구들이 싫다 싫어..이니..
 
 이 뇨자는....
 부모 자식간의 인연고리를 두고 간이역 역무원과 기차로 비교하고 싶다.
 부모는 어느 시골 간이역의 역무원이고
 자식은 끝없이 달리는 기차라고..
 시간에 맞추어 기차를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은 역무원의 의무인 것처럼..
 언젠가 때가 되면 자식도 품에서 떠나 보내야 하는 것.
 그런데 그 넘의 정 때문에 싶게 떠나 보내지를 못하는데
 갈등의 원인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날 힘들게 시집살이 시키신 우리 시어머님은 계모이시다.
 시아버님은 6.25 전쟁 피난중에 병환으로 어머님을 먼저 보내시고..
 줄줄이 사탕처럼 어린 자식들 땜에 재혼을 하시는 것은 당연하신데
 비수무리한 나이의 여자를 친척들이 중매를 권했건만
 지금의 어머님 친정에 많은 빚을 갚아 주시고
 훗날 도움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버님과 자그마치 25살 차이가 나시는 딸같은 새 어머님을 맞이하셨다고 한다.
 시아버님 50세,
 시어머님 꽃다운 나이 25세.
 두 분이 재혼할 당시 한참동안 온 동네의 톱 뉴스꺼리가 되었다고 하더라.
 물론 어머님도 두 번째 결혼이시고..
 첫 결혼에서 5년 동안 자식을 얻지 못해서 소박받아서 쫒겨 오셨다나..
 아버님은 당신께서 어린 자식들이 있으니
 자식을 못 낳는 여자를 택한다는 이유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셨단다.
 
 하지만 아버님은 딸같은 아내를 데리고 살다 보니
 언제 어느 날 젊은 아내가 산토끼처럼 토깡이 놀 것 같은 불안을 느껴셨고.
 고심 끝에 두분 사이에 자식을 낳아야겠다는 마음을 결심하시고
 젊고 젊은 아내의 임신에 좋다는 약을 조선 팔방으로 구하시니
 아버님의 지긋한 정성에 새 어머님은 1녀 2남을 생산하셨단다.
 시아버지 55세 시어머님 30세에 두 분 사랑의 첫 결실을 보게 되었단다.
 
 시어머님 친정생활비와 절약하지 않는 사치생활에 시댁은 
 좀 가진 재산은 얼마 가지 못하고 훌훌 다 날아가고
 황금벌이 능력을 잃어버린 시아버지는 종이 호랑이 신세.
 당연 시집의 생활비와 2남1녀 이복형제들의 양육비와 교육비는 
 남편 형제들의 몫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주버님이 이복형제들 대학졸업하고 결혼을 해서 독립할 때까지
 거의 생활비를 대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셨다.
 시동생 댁과 우리는 처음 몇 년은 생활비를 보태어 주었지만
 우리 살기도 바빠 일 년에 몇 번씩 넉넉하게 용돈정도 보태곤 했다.
 워낙 큰댁이 잘 살기도 했지만..
 아주버님과 형님께서 효자효부이시기에 그려라고 하셨기에..
 
 우리 새 시어머님.
 아버님 살아 생전 며느리들한테 한마디로 참 대단하셨다.
 이미 늙은 영감이 되어버린 시아버님을 귀찮아하시면서 늘 구박하시기 일수였고
 그 걸 보시는 아주버님께서 결혼하시자마자 시아버님을 정성껏 모시게 되고
 이 뇨자가 시집오니 시어머님은 당신이 탄생하신 자식과 따로 살고 계셨다.
 어머님은 그렇게도 잘 하시는 형님이 무엇이 그리 못 마땅하신지
 아래동서 우리들을 만나면 늘 큰 며느리 흉만 보셨으니..
 그렇다고 나를 어여쁘게 생각하시는 것은 천만에 만만에...
 돌려가면서 다른 동서들에게 흉을 보신다.
 어떤 음식을 해도 나무라시고 꾸중을 하시면서 한번도 ok 사인을 주신적 없다.
 가족들만 모이면 생활비가 충족하지 못하니..
 어린 너희 동생들이(이복 동생들) 장래가 불쌍하니..하시면서
 장판놀음에다 울고불고 큰 굿판을 벌리시고..
 백조이신 어머님은 정말 우아하시게
 교회와 바깥 나들이만 다니시는..
 일생을 자신만을 즐겁게 사시 모습만 보여셨는 것 같다.
 한마디로 속되게 표현해서 전처 자식들 등골만 빼먹었다고 할까..
 우리 어머님의 늘 부르는 레파토리..
 '어 젊을때 너거 집에 들어 와서 랑..
 어린 너거들 치닥거리 다 했으니 대접받아 마땅하다..'
 울 화상과 손 아래 시동생 왈...
 '계모한테 받은 그 설움 어디에 비하리까' 하고..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시어머님의 불같은 성격으로 보아
 전처 자식들이 좀 힘들게 살아 온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남편 형제들..
 특히 아주버님은 새 시어머님을 탓하면 아버님에게 불효라고 생각하시어
 될수있으면 시어머님 뜻을 다 존중하셨다.
 시어머님과 아들인 아주버님 나이차이 불과 2살.
 맏 며느리이신 형님과 5살 차이..
 하지만 아주버님은 한번도 시어머님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셨고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효자이시다.
 
 많은 세월이 흘러..
 시아버님 87세에 둘째 아들(우리 화상) 앞세우고
 1년 뒤 호상으로 별세하시어 명당에 자리하시었다.
 이복 시누이 음대를 나와서 좋은 자리에 결혼하고
 이복 큰 시동생 포항공대를 나와서 교직에 적을 두고..
 작은 시동생 아주버님 이사로 있는 D건설회사에 취직을 하고
 이복형제들 모두가 가정이란 독립체를 이루면서
 우리 전처형제들 짐을 벗어났지만...
 아주버님은 늦게까지 그 짐을 못 벗어났다.
 시 아버님의 유언..
 너거 엄마한테 살 수있는 보다 큰집을 바꿔주라는....
 대구 시내에 있는 3층 건물을 아주버님은 어머님에게 이전해 주셨다.
 
 그런데..
 그 누구도 세월은 이기지 못하더라.
 그렇게도 당당하시던 시어머님께서 탄생시킨 당신 며느리를 보신 후
 어쩔수없이 기세좋던 독수리 날개가 부러지는 신세가 되었다고 할까..
 요즘 젊은 새댁들 누가 시집살이하려고 하겠는가..
 당신께서 낳으씬 두 시동생들.
 별난 성격의 자기엄마와 도저히 함께 못살겠다고 당연히 분가하였고.
 당신 자식이 이러한데..
 전처 자식 며느리한테 더 이상의 시집살이시키는 것은
 이론상 어부지라라는 것을 늦게 깨달은 듯...
 간섭은커녕...
 우리 동서들한테 시킨 시집살이는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진 기라.
 지독한 시집살이 막을 드디어 내리게 되었지 랑....
 그도 불과 몇 년 전에..
 
 이 뇨자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40대~50대 중반에 들어 썬 우리 여인들 세대가 가장 불행한 삶이라고...
 '두리 두리 넓은 상에 수저 놓기 힘들더라.
 벙어리 3년.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세월을 두고..
 고추보다 더 매운 시집살이 어찌 할거나..'
 힘들게 하던 시집살이 막을 내리고 끝 낼 즈음..
 또 다른 시집살이의 새로운 막이 오르기 땜이다.
 즉 며느리의 시집살이가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요즘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시집 살 각오를 단단히 해야
 며느리를 맞이 할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이라고.
 
 나 또한 지금..
 지난 과거 내 시집살이는 기억 밖으로 밀려나고
 며느리시집살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이나 드라마에서 보면
 의사,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사'자 달린 잘난 아들의 몇몇 부모들은
 당당하게 시어머니 값을 하고 유세도 부리곤 하더라 만은....
 그렇지 못한 나로서는 늘 부족한 아들 때문에..
 며느리에게 한 발짝 물러서서 눈치 끝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솔직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타인끼리 만나서 같은지붕 밑에서 사는데 늘 같은 코드일수는 없지 않는가?
 며느리 입장인 그녀도..
 시어머니 격인 나도...
 꼭 꼬집어 말하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불평이 있기 마련...
 서로들 표현만 하지 않을뿐이다.
 
 우리 집 같은 경우..
 아들놈이 오로지 지 여편네 위하고 하늘처럼 바라보고 살면 무슨 탈...
 구멍가게 같은 장사도 사업이라고...
 대인관계를 맺는다는 이유로 때로는 밖으로 나 돌고.
 아직은 젊음청춘을 주체하지 못하여 가끔씩 이단의 길로 헤매고 하니
 그 책임은 당연 자식 교육 잘 못 시킨 어미의 업보가 되어
 며느리로부터 쏟아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책으로 이어지고.
 지 마느라 소 도시로 시집온 것도...
 어미가 생활터전을 잘 못 잡았다는 아들의 질타에 괴롭고..등등...
 그러기에.....
 불평있은들 말 한마디 못하는 석탄 백탄 다 타는 이 뇨자의 심정을 누가 다 알랴.
 솔직히 요즘 시대는..
 시어머니뇬이 며느리님 시집을 살아야 한 가정의 태평세월을 찾는 길이리라.
 또한 그 방법이 최상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들놈은...
 나로서는 힘들게 생활터전을 잡아서 지네들에게 넘겨주었건만
 한번도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자식으로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아들부부의 유토피아는 이 곳을 떠나 도시로 향하고 싶어하는 같다.
 은근 슬쩍..한마디 던지는 말에..
 이 곳에 핵폐기장이 들어와서 랑...
 많은 보상을 받아서 도시생활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니..
 한번은 이런 아들놈 보고..
 어미가 이만큼 생활터전을 잡아 밥 먹고 사는 것에 지장없는데
 무슨 불만이냐고..
 큰소리치다가 한마디로 큰코다치고 말았다.
 '우 쉬~짐승처럼 밥만 먹고 살수 있 남?'...
 이병철, 정주영 같은 재력가를 들추면서 운운....'하는데 더 이상 할말이 없더라.
 어쩜 아들놈 말이 맞기도 하고...
 
 주위에서 아들내외를 분가를 시키라고 한다.
 마음 편안하게 살려면...
 나 역시 천번 만번 그라고 싶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들 내외가 무슨 속보(속 마음)를 가지고 있는지????
 외아들 운운하면서....절대 분가는 못한다고 하니..
 분가소리 몇 번 꺼내다가 아들놈한테
 '우리 엄마 맞아..계모 아님 가?' 하고
 보이지 않는 예리한 칼날로 어미 허파를 마구마구 난도질하더라.
 아들놈 부부는 3층에서..
 어미는 1층에서 적과 동침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아~
 대한민국의 40대~50대의 중년 여인들..
 이르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삶의 기로에 서서
 시집살이라는 보이지 않는 수렁에서 한 평생을 헤어나지 못하니..
 오늘도 슬피 울고 있는 가련한 모습이여..
 여자의 일생을 두고...
 산 넘어 또 산이라고 하던가...
 그 누가 자식을 두고 애물단지라고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