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어김없이 뭔가를 해야 할것 같은,
그것도 정말 괜찮은일 하나 했다 싶은 일 한가지를 해내야 할것 같은
의무감이 들곤 한다.
그런 종류의 의무감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둔 모든 우리 부모들의
공통된 의무감 일거라 생각한다.
특별히, 무슨 일이라도 계획되어 있지 않은 주말엔
산에 가기로 잠정적인 결정을 내리곤 하는건 남편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척에 두고도 아직 못 올라가본 '축령산'을 가보자고 마음을 먹은게
어제 저녁이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
아이들과 북적대며 대강 여정을 챙기고 나섰다.
한 삼십여분을 차로 달렸을까, 축령산휴양림이라는 간판이 수풀속에서 삐죽 얼굴을
내밀며 우리가족을 맞아 주었다.
산은 목하, 초록의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장마철인 관계로 비가 자주 내린 탓이었을 것이다.
촉촉한 수분기를 잔뜩 품고 있는 땅은 온갖 잡초며 나무와 푸성귀까지
어디 한군데 빈틈없이 빽빽히 보듬고 있었다.
도로 양편으로 한창 피어있어서 어디서든 흔히 볼수 있는
개망초와 달맞이꽃이 서로 키를 재듯이 비슷한 키높이로 피어있었고,
가끔씩 만나게 되는 무논에도 여지없이 푸르게 자라고 있는 벼들이
초록색 바다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도 푸른물이 들것 처럼
상큼한 느낌을 전해 받으며 오랫만의 산행에 마음이 먼저 달떠 올랐다.
하지만,축령산은 정상까지 3킬로 남짓되는 그리 쉬운 산은 아니었다.
나처럼 산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고, 체력의 한계를 쉽게 느끼는
사람에겐 축령산은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시작되는 축령산 입구쪽엔
방갈로 주변으로 가족단위로 야영을 하고 있는 듯한
텐트족들이 이른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는지 라면냄새가
먼저 후각을 자극해 왔다.벌써, 야영이 그리운 계절인 시작된것이다.
머잖아 여름휴가철이고 보면 숲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텐트족들이
이상할것도 없어 우리도 맘먹고 여기서 야영을 해보자며 야영장을 빠져
숲을 향해 나아갔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울울해서 조금은 흐릿한
날씨를 더욱 어두침침하게 만들었다.
그속에서 더욱 진하게 퍼져오던 숲향기... 마음을 열고 몸을 열어
폐부 깊숙이 숲의 향기를 맡아 보았다.
축령산은 산중턱을 기준으로 아래로는 전나무와 소나무등 침엽수림이
들어섰고, 그 위로는 참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활엽수들이 자라는 모양으로
펼쳐져 마치 침엽수림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낙엽송들이
침엽수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형상이었다.
흔히, 피톤치드라고 하는 나무가 품어내는 방향성물질은
침엽수림에서 더 많이 발산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비가 내린 뒤라 촉촉해진 공기속으로 청정한 기운을 아낌없이 품어내서는
그 공기를 들어마신 우리로 하여금 폐부 깊숙이 까지 그린샤워를 하는듯한
상큼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가끔씩 산길 가운데 떨어진 잣열매를 만나곤
했는데 솔방울 같기도 하고 작은 파인애플 같기도 한 잣열매를 처음 본 아이들이
잣열매를 신기한듯 만지작 거리기도 했고, 그것이 풍기는 독특한 향기를
맡아 보며 연신'냄새 좋다'를 외치기도 했다.
산 중턱을 넘어서자 침엽수림이 끝나고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손을 흔드는 듯한 활엽수림이 반겨 주었다.
'상수리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 등등의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이
넓은 잎사귀를 흔들어 오랫만에 산을 찾은 우리를 맞아 주었지만
그때부터 다리에 힘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벌써 저기 산정상을 향하는데 몸은 천근만근이다.
아이들은 새처럼 가는 다리를 가진 아이들은 저리도 신나게 산을
타는데 뒤에 처진 나는 좀체로 기운을 돋을 수가 없었다.
지난주에 아팠던 탓이라고 위무를 해 보아도 어쩐지 쓸쓸했다.
산을 오르는게 쉽지가 않아서
체력을 보강해야 겠다는 새삼스런 의지를 다져보고는 했다.
어렵게 산중턱에 올라 보니 마침 편편하게 다져진 바위가
여기 쉬어 가라는듯 지친 나를 불러 주었다.
바람이 한줄기 불어와 땀방울을 씻어주는 사이, 잠시 바위에 걸터 앉아
숨을 들이켜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장엄하게 펼쳐진 산의 준령들이 굽이굽이 그 끝을 알수 없게
끝없이 이어져 흐르고 있었다.
초록숲이 품어내는 청정한 기운과
가끔씩 불어오는 산바람과,
저 아래 산능선들이 힘차게 뻗어있는 장관을 보는일....
그것은 산이 주는 아름다움이요, 또한 산이 주는 선물임을 산아래 펼쳐진 능선을 보며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유난히 침엽수림이 울창해서
솔향기가 향기롭던,
산 중간중간 아이들을 위한 쉼터가 있어 엄마아빠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모습이 정겹던,
그리고 버려진 나무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놓은듯한 구름다리가 멋스러워
오래 머물고 싶었던 축령산을 오늘은 정상을 앞두고 내려와야 해서
여간 아쉬움이 남는게 아니지만,
머잖아 다시 한번 축령산을 오르리라 다짐을 하며 내려오는길,
마침 장마로 물이 불은 계곡물이 우렁차게 흘러 내리고 있었다.
물장난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리가 없었다.
물놀이 하기에 적당한 곳엔 이미 가족단위의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속으로 뛰어든 아이들은 산을 올랐던 피로도 잊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노는 양을 지켜보는 위로 구름을 뚫고 오후의
엷은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