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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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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있어 친정은.....


BY 아침이슬 2003-07-05

한 남자와 인연을 맺고 결혼 생활이란 걸 시작한 곳이 그야말로 층층시하 시어른들과 함께 하는 곳이었다...

 

무척이나 성격이 까다로우시던 시아버지와 몇십년 장사로 잔뼈가 굵으신 너무나 남자 같은 시어머니께서 이층안방에서 기거하셨고.

그옆을 돌아 이층 조금 큰방엔 우리보다 일년정도 먼저 결혼을 하신 시숙내외가 아직 분가를 하지 않은채 같이 살고 계셨다.

 

우리가 살아야 할곳은  시숙내외가 분가하기 전까진 삼층옥상위에 작으마한 옥탑방이었다...

맑은날 밤이면 수없이 많은 별들이 창문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때때로 긴 은하수가  안부를 물어오듯 방안을 살그머니 들여다 봐 주는 아주 창이 넓은 작은 그런 방이었다...

그러다 한여름 소나기라도 내리면 창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는 그래도 나에겐 편안한 안식처라 생각하기에 손색이 없는 방이었다...

 

그곳에서 살기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어른들 밑에서 사는 법을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갓 데려와 훈련을 시키는 애완견마냥 너무나 주눅들고 조심스러워 크게 숨쉬는것 조차 힘들어 했다.

 

새벽이 되면 알람시계처럼 눈이 번쩍 뜨였고.살금 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일층 식당으로 내려와 아침준비를 하고. 청소며 그날 장사 준비를 했다..

 

몇개월동안 친정엄마에게도 가보지 못한채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엄마 생신날이 되어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스럼  어둠이 내리는 저녁에 도착하여  목이 메여 엄마를 한번 불러보곤 방안에 가방을 휙 던져버렸다.

아...이렇게 편안할수가... 갑자기 맥이 탁 풀려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단잠에 빠져버린 난 그 다음날이 엄마 생신이란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어 버리고 말았다...

친정에 잠자러 온 사람마냥 아주 깊이 천지도 모른채 잠속에서 헤매고 다녔다..

결혼하고 처음 친정에 와서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딸이 안스러워 차마 깨울수가 없었던 내 어머닌 마음이 많이도 아프셨던가 보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방안을 휘 둘러보는데 언니가 한참 미역국이며 밥을 날르고 있었다..

"어 ..언니 나 몇시간이나 잤어?"

"거의 열 서너시간은 잔듯한데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더라"

하...기지개를 펴고 생각해보니 참 묘한 일이다...

시어머니 생신날에 그렇게 마음 편히 잘수가 있을까?

잘수도 없지만 잤으면 또 얼마나  꾸중을 들었을꼬?

 

시집으로 향하는 차속에서 아 이런거였구나 ...친정과 시집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하며 계속 중얼거렸다...

시집이라고 누가 그렇게 시집살이를 시킨것도 아니건만 어른들이 계시니 늘 긴장하고 늘 마음졸이고 그게 바로 시집살이었나 보다...

아무리 못해도 친정엄마 친정엄마고 아무리 잘해도 시어머닌 시어머니란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말이란걸 그때서야 난 알수 있었다..

 

때때로 난 그런 생각이 든다...

여자에게 있어 친정이란 비빌 언덕이고  빽이다.

잘살지 못해도 살아만 계시면 너무나 큰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분들...

친정이 없는 미혼인 여자들에겐 없는 무언가 그리도 애틋하고, 그리움이 짙은 그런곳 ...

마음에 존재하는 곳...

 

한분계시던 엄마 마저 먼길을 가신후 내가슴엔 아주 커다란 외로움이란것이 자라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흘러가는 길이만큼 같이 자라는 외로움...

이세상에 친정없는 여자가 가장 외롭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난 오늘도 애처롭게 친정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