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할머니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깨끗이 머리를 감고, 물 축인 빗으로 하얗게 세월이 내려 앉은 머리 곱게 빗으시고...정성스레 비녀를 꽂으신 다음 거울 한번보고 좀있다 또 보고...팔순이 넘은 얼굴에 예쁜 미소담고, 장롱 속에 곱게 개어놓은 고운 옷 꺼내입고 옷고름을 여미실 때...나는 외할머니가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매요~"
"와..?"
"할매 와 그래 이뿌게 하는데요? 오늘 누가 와예?"
"ㅎㅎ 좀 있으마 안다...기다리봐라.."
"누군데요...?"
"저기 손재봉틀이나 이리 같이 꺼내자."
방구석에 있는 손재봉틀을 낑낑 방 중간에 꺼내놓자 할머니는 정성스레 큰 초 두개를 손재봉틀 뚜껑 양쪽에 정성스레 세우셨다.
국민학교 6학년 겨울방학에 외갓집을 외사촌형들과 다녀온 이래...나는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가 계신 약목면 관호동엘 갔다. 가봐야 불편한 잠자리, 마땅찮은 식사였지만...나는 그 곳이 좋았다.
엄마의 어릴적 향기가 묻어있는 그 집. 그 집엔 방학만 되면 외손주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시는 외할머니가 계셨으므로...
"익이 왔구나..." 흙빛 주름진 손으로 내 손 꼭 부여잡고...내 손등 쓸고 또 쓸며 반가이 맞아주시는 외할머니가 계셨으므로...
곱게 단장하신 할머니는 방문 반쯤 열어두고 그 분을 기다리셨다. 나도 외할머니 시선따라 자꾸만 밖을 바라보다가 급기야는 참지 못하고 마당으로 내려와 있다가...결국엔 문 밖에 나가 저 동네 길 앞을 바라보면서 서성대고 있는데...
"익아~ 춥다. 들온나...좀 있으마 오실거다...들온나 고마..."
"나 안 춥어예...그냥 여기서 놉니다...기다리는 거 아이라예~"
그래도 내 시선은 자꾸 동네 어귀에 맴돌고 있었다.
점심 때쯤 되자, 동네 어귀에 그분이 드디어 나타나셨다. 내 외할머니의 연인...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 외할머니를 들뜨게하고 단장하게 만든 그 장본인.
검은 옷에 털신을 신고, 옆에는 책 한 권 끼고 성큼성큼 걸어오시는 키 큰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동네분들은 이미 아시는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가까이 다가온 할아버지의 얼굴에 걸린 동그란 안경너머엔 파란색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할매~ 손님와예~" 마당으로 달려드니...할머니 이미 대청에 나와 서 계시고...할아버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한국말로...
"혈색 좋으시네요~ 오늘은 훨씬 더 이쁘시네요~"
할머니 수줍은 미소로 할아버지를 방으로 모시고, 할아버지는 당연한 듯 성큼 댓돌에 털신 벗어두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방문이 굳게 닫히고...방안에는 두런 두런 이야기 소리...가끔은 노래소리까지...
궁금해진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안방으로 상들이는 작은 쪽문을 빼꼼이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방안에는 촛불이 곱게 타오르는 손재봉틀을 중간에 두고 두분이 마주앉아...나중에 알게된 미사를 보고 계셨다. 두분만의 조용하고도 경건한 미사...나중에 나도 적을 둔 적 있는 성당에서 여러번 미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분만의 미사처럼 아름답고 경건한 미사는 보질 못했다.
외할머니 연세가 많아 거동이 불편하시자...왜관교구에 계시던 벽안의 프랑스 할아버지 신부님, 할머니만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한달에 한번씩 외갓댁에 들리셨다.
그 자신도 청춘에 한국엘와서 그 당시 머리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되었음에도...한국을 사랑하듯 할머니를 사랑하신 내 외할머니의 연인, 그 벽안의 멋진 신부님은 내 외할머니만을 위한 미사를 위해 그렇게 오셨고...내 외할머니는 그분을 위해 그렇게 곱게 단장하고 기다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