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이 꼬박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여 나온 우표를 그때 샀었으니...
기념우표를 두고 두고 보관하여 둘 생각이 있어서 그리 한건 아니었다.
편지지에 편지를 적고 봉투에 주소를 적어서
우편번호가 맞는지 확인해 가며 우체국까지 걸어서
직접 우체통에 넣고 싶어서 그러니까 편지를 쓰고 싶어서 우표를 산게 월드컵기념우표였다.
기념용이 아니었는데 참 욕심도 부렸었다.
무려 스무장이나 샀었으니... 그 우표엔 월드컵 전사들이
각각의 폼으로 멋지게 슛팅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마저도 오래되어서 누구의 얼굴이 어떻게 새겨졌었는지
다시 들여다 봐야 알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끔은 편지를 썼던것 같다.
이메일주소랑 함께 오프라인 주소도 갖고 다니면서 말이다.
급한 일이 있거나 간단하게 말해 둘것이 있을 경우에만
이메일을 사용하자며 내 스스로 디지털 인간이기를 거부했었다.
(이메일을 거부한다고 해서 디지털인간이라 말하긴 뭣하지만)
그렇게 얼마동안은 이메일에 거부감까지 보이며 기존방식을 고수했던건
내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것 같다.
진정한 마음을 전하는 일, 그 마음이 빠르게 전달되어지지 않음으로해서
보내는 사람이 그 마음의 편린이 가고 있는 방향을 가늠해 보는일,
그리고 그 편지를 받고서 기뻐할 상대방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돈주고는 결코 사지 못할 값진 삶의 기쁨이 아니던가?
편지봉투는 한꺼번에 백여장 들이를 구입했었지만,
편지지는 굳이 사지 않았었다.
집에 널려 있는 복사용지면 훌륭한 편지지가 되어 주었으니까 말이다.
못 그리는 그림솜씨도, 몇가지의 칼라펜만 있으면 훌륭한
나만의 편지지가 되어서 팬시점에서 산 것보다 나은 편지지로 탄생되고는 했었다.
그때, 그렇게 편지를 손수 써나갈때만해도 난
광고지나 신문이나 잡지등속에 있는 이쁜 사진이 있으면 오려두는
조금은 유치한 버릇을 갖고 있었다.
칼라펜으로 편지지를 장식할 여유가 없을때 그 사진들은 참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어 하얀복사용지에 하나만 붙여도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그런
편지지가 되어주곤 했으니까..
그때 난 편지를 쓰지 않을수가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기도 했었다.
아파서 병상에 오년동안이라는 긴세월을 누워 있어야 했던 친구가 내게 있었다.
그녀에게 난 편지를 자주 썼었다.
봄이 되었다고ㅡ, 진달래 피고 민들레랑 제비꽃이 초록풀밭에 어울리게 피어났다고
썼고,여름이 되어서 녹음이 짙어져 사방이 초록물결이라고...
가을이 와서 만산에 홍엽이 들어 사람들을 숲으로 초대하더라고...
올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이와서 하얀세상이 자주 연출된다고.. 그렇게
사계절을 보고 느낀바대로 적어 친구한테 편지를 썼었다.
그친구가
떠나던 이년전 가을, 그후로 난 편지를 쓸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수도 있었지만,
편지지만 꺼내면 그 친구가 생각나서 더이상 편지를 쓸수가 없었다.
한동안 ㅡ,그 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 편지를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가, 우리 서로 아픔을 보듬자며 먼저 보낸 친구의 몫까지
아름답게 살자며 친구가 편지를 보내왔을때.. 난 다시 편지지를 꺼내 들었다.
가끔, 예전의 그 열정만큼은 못되게 편지를 쓰고는
우체국으로 난 길을 따라,덩굴장미랑 찔레꽃이 어울려 피어 있던
길을 따라 편지를 부치러 다니곤 했었다.
하지만, 어느결엔가 이메일의 편리성과 신속성과 그리고 다양함에
나도 모르게 빠져 들고 있었던가 보았다. 점점 편지 쓰는 일이 줄어들고,
이메일 횟수는 늘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작년 월드컵때 기념우표를 사고 부터 였던것 같다. 그후로 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편지를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그 소망을 내스스로 저버리고 말았으니
난 참 못난 사람이다. 이건 편지에 대한 배반이다.
다시 편지를 써보리라 생각한다.
지금 내게 남은 이제는 빛이 바래가는 우표를 다시 꺼내,
편지를 쓰리라 다짐한다.
그런데 요즈음 우표값이 얼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