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막은 내려졌다.
무대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몸짓으로 분주하고.....
나 또한 돌아가야 할 집이 있기에
나의 공간으로 가야 했다.
몇날 몇일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온 무대는
언제나 그렇듯이 잘한점과 부족한 점을
남기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하였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무르익은 가을은 어느새 저만큼이나 흘러서
익숙할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낯이 설고 .....
'감사'라는 명목하에 치뤄진 한바탕의 연극은
드디어 막이 내려지고 있었다.
새벽잠을 뿌리치고 서둘러 하루를 시작했지
이른아침 미용실 문두드려 첫손님이 된 나는
가장 단정한 모습으로 그날의 분위기에 맞는
한벌의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고 있는 듯 하여도
꼭 필요한 부분이 되어버린
내방한 손님들을 맞는 분주한 손길로
하루를 보내야 하니까 .....
빡빡하게 채워낸 긴긴 하루는 그렇게 흐르고
몸은 온통 파김치가 되어 버리고
발바닥이 얼얼하게 뛰어다닌 하루가
맥없이 스러졌었지.....
돌아가는 가을의 길목에 서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에 빠질 틈도 없이
집으로 가야만 했다.
엄마의 사랑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주린 배를 하고도 아이들은 해맑기만 했다.
서로 서로 달려와 안아달라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안아줄 기운조차 내겐 남아있지 못하였다.
손까딱하기 싫을 만큼의 피로가 나를 엄습하여 와서
적당히(?) 저녁을 떼울 궁리를 해본다.
전화번호부를 들추고 메뉴를 고르는데 영 적당한 데가
없어서 아무죄도 없는 우리 동네는 내게서 후지다고
욕을 먹는다.
어렵싸리 골라낸 메뉴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까스를 고른다.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입으로 연신 돈까스를 날라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친 나를 달래어 본다.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은 행복해 한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아주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에 숨어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으면 되는 거야....
밥심(?) 때문이었을까 ?
밥을 먹고 나니 조금은 힘을 내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하루쯤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었지만
그것도 잠을 잘 자기 위한 준비였으리라.
나가나, 들어가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내게 주어진 일의 양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무리지어 내게로 왔다.
어제는 그런 생각들마저도 모두 귀찮아져서
그냥 내쳐 잠들어 버린 하루.....
아침은 고요로왔고, 어제 보다는 약간 쌀쌀한 느낌으로
나의 창을 두드린다.
가디건을 챙겨 입고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 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나는 또 하루를 연다.
그래도 다행인건 나의 얼굴에 스며있던
피로의 그늘이 오늘 아침엔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속 한켠에 살고 있는 어떤 시름이 있었다면
오늘은 모두 떨구어 버리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하루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가을은 깊어만 가는데....
맑은 하늘과 상큼한 바람을 좀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어야지.....
내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에
가을햇살을 듬뿍 담아서
오래도록 담아 두어야지.....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은 설레기만 하니
철없는 어린아이라도 된 양 마음이 부풀고 있다.
내일은
깊어가는 가을의 길목에서
옷깃을 여미어 보며 갈바람을 맞고 싶다.
내안의 또 다른 나를 모두 비워내고
가을향이 묻어나는 여자로
맑은 하루를 그려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