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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스기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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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85

파도 신나는 소풍을가다~~~


BY 파도 2000-09-26

지난 번에는 칵테일 님의 홈에 갔는데

가서 눈물을 훔치고 정작한마디 해야 하는데도

한 마디로 할수 있는 마음이 안되서

이지면을 빌어서...

무슨 말이 위로가 될수 있는 것이 아님을

느껴서 그냥 눈팅만 하고 나왔습니다....

님! 마음의 고통은 영혼을 살찌우는법 ...

그대 그런 고통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행복이 존재함에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았나이다....

지는 언제 그런 홈을 마련할지? 늦게나마 축하 합니다



다시 야학이야기로 돌아 가서

애들은 항상 정상적인 애들과

같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신념아래 애들을 데리고 동구능으로 소풍을 강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는 짓이라고 느끼는데 ...

그 당시에 야학에는 학교처럼 교감 선생님

교무주임 학생주임 서무주임등등..

학교생활에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교감은 그때 4학년으로 하늘같은 선배였고..

각 주임들은 3학년으로 이루어 졌있었다

학교와 비슷하게 회의도 했다

그회의의 내용의 전부는 학생 선생님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회비를 마련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사황에서..애들이 소풍을 가야 했는데....

당장 먹을것이 없어서 굶고 오는 애들이 많았는데...

소풍을 가기가 정말 어려웠다

애들이 진학반과 기초반해서 전부 50명에다

선생님이 30명이면..거진 100명의

식사를 준비하여야하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항상 우리의 구세주는 신부님이 셨다

소풍간다는 계획을 아신 신부님은

그때 돈으로 작지 않은 돈을 내 놓으시면서...

작은 돈이나마 여러가지를 준비하고 하셨다
(그런데 작은 돈이 아니였다 ...지금은 미국으로 가신 신부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

그러니 우리는 순풍에 돛을 단 격이었다

우리들이 모은 돈이랑 신부님이 주신 돈을 합하니

제법 그럴듯한 소풍이 될것 같았는데...

이것 밥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일을 해본 경험들이 없어서..

맘만 앞섰지 실질적인 행동을 생각 해 볼려니..

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난 또 다른 여자 선생님과 신부님 부엌을 빌어서

그곳에서 김밥을 싸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하고

또각종 간식 거리는 남자선생님들에게 맡기고

시장을 신나게 보고 카톨릭 회관으로 돌아 와서

시장 본것을 전부 다 옮겨서 재료와 각종 야채손질을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신부님 부엌으로 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신부님 사모님께서(부인이 계시는 교회는 무슨 파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냥 추측에 성공회인것 같당 )

당신의 부엌을 사용하지 말라는것이다..

밑에 일층에 국수 삶는(그당시에 우리 신부님은 국수를 삶아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셨다)

간이 부엌에서 그 김밥 싸는 일을 하라는것이 아닌가....

속으로 황당하고 어린맘에 얼마나 속이 상한지

이유인 즉선..자기 네 부엌은 2층이라서

물이 잘 안빠져서 안되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잘 사용하던 부엌이였다)

속상함을 어떻게 표시를 할수가 없었다

그 사모님은 유명한 대학에 교수로 나가는 분이셨다...

그런 이야기를 하신것이 었다...

그때에 느낀 감정은 공부를 많이 했다고

그리고 신부님의 부인이라도

자기의 영역 침해는 용서가 안되었나 보다..

하기사 지금 그때일을 생각 해 보면

마음만 앞섰지 사실 할수 있는 일을 거의 없었다

단지 김밥하나만 생각 했기 때문에

그냥 못하라는 말에 흥분은 했지만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난후에는

그 사모님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 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간후에 그것도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심정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김밥재료를 모두 일층간이 부엌으로

다시 옮겨서 일을 시작했다..시작은 했지만...

그 섭섭함은 아직도 이 중년의 나이에도 가슴에 남아 있다

쌀이랑 재료들을 다 마련하여 밤이 새도록 김밥을 말았다

말고 또 말고 갯수로 세어 보니

일인당 2개씩 계산하여 230~250개를 말았다

다소 여유가 있어야 했다 (성베다 교회에 근무하시는 사람이랑 등등 몇 사람들에게도 김밥을 드려야 했기때문에...)

그때에 김밥싼 솜씨가 지금도 남아 있다...

처음해본 밥이였는데도 얼마나 잘 되었는지..

그때의 실력은 내가 한것이 아니고

나의 힘이 아니고 다른 어떤 큰 힘이 작용했던것 같다..아마도

그당시 난 밥이라곤 해보지도 않았다

가끔 시골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쁘신 관계로

항상 밥하는애가 있어서 간혹 별식으로

김밥 싼 경험이 전부였는데...

저녁때 한 7시경부터 준비와 말은 김밥이

다음날3시경는에 다 말았다

둘이서 그것도 여자 선생님과 나랑 둘이서..했다

그 선생님도 나랑 마찬가지로 일에 익숙하지는 않았는데 ...

참 겁도 없이 그것을 하겠다고 한것은 지금 생각 해 보아도..

이룰수가 없는 일인데 우리는 해 낸것이다

간이식당 식탁(?)말이 식탁이지

평상(넓은 마루판?) 수준의 넒다란 곳에 가득히 김밥밭이었다...

그런데 말긴 말았는데 이것을 다 썰어서 도시락에 담고

그리고 몇줄의 편지를 넣고 하는

작업이 아침7시까지 진행되었다...

그러고 보니 하루 밤을 김밥말는 일로 다 사용한것이다

전부 다 도시락으로 만들고 난후에 시간을 보니 아침 8시 였다

그래도 피곤한줄을 몰랐다..

내가 한것 같지가 않았다...

아마도 내가 한것 이 아니였는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준비를 다 하고 신나는 소풍을 갔다

버스를 타고 동구능으로 신나하는 애들이나

즐거워하는 선생님들이나 모두 한마음으로

내가 학교때 갔던 소풍은 비교가 안되었다

어찌나 즐거운지 애들의 얼굴에는 모처럼 신남이 보였다...

남자 선생님과 여자 선생님들과 준비한것을

가지고 동구능에 도착하여...

신나고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소풍이 시작된것이다...

교감선생님의 인사 말씀은 지겨운 일인데도(항상 교장 교감선생님들은 어디를 가거나 갔을때 말씀이 길었는데 역시나 였다)

그래도 조금 있다가 벌어질 오락시간과 도시락 먹는 시간 ...

이런 즐거움에 비함 그 잔소리 쯤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내가 소풍나온 애들 보다 더 즐거웠어니...쩝쩝

예나 지금이나 왜그리 철이 안드는지..

우리 반끼리의 자유시간에 맘에 드는 선생님 모셔오기를 하여

원으로 둘러 앉아서..손수건 돌리기..끝말 잇기...

그리고 보물찾기등등...

요사이에 비함 아무것도 아닌것이지만

기억에 그 시절의 소풍은 꿈에도 잊을수가 없다...

도시락 먹는 점심시간에는 각자 도시락 속에

들어 있는 말을 발표를 했는데

전부 사랑한다고 그리고 행복한 소풍이 되라는

말의 일색이었지만...

그래도 애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금도 선하다...하하하

혼자서 이 소풍일에 너무 몰두를 하여

두서가 없는 글이 된진 않았나 싶네여...

머리에는 아직도 천진한 애들과 선생님들의 미소가

자꾸자꾸 보이는 아침이네 그려...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