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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할머니와 김치통


BY 다알리아 2000-09-25





퉁퉁 부은 목에 빙빙도는 머리에
아직도 무거운 마음으로
오늘 아침도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어?
이게 모야?
현관문 밖에는 애호박 두개와 아직 뿌리에 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파 한다발이 신문지에 둘둘 말린채 빈 김치통과 함께 놓여있었습니다.

그 김치통은...
한달전쯤 어느날 저녁 무렵 고추장을 푸러 옥상에 갔다가
늘 장항아리 뚜껑을 열어주시는 고마우신 15층 할머니께
인사라도 하고 내려가려고...
할머니집 현관문을 살며시 열어본날...

할머니는 거실 한구석에 힘없이 잠들어 계셨고 머리맡에는
빈그릇과 밥숫가락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었습니다.
평소에 깔끔하신 할머니댁이 이게 웬일....
어수선한 거실과 주방 ...
냉장고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불빛만 훤 했습니다.

몹시 걱정스런 마음으로 집에 내려온 나는
전날에 넉넉히 담아논 김치 한통과 미역국 한냄비를 들고 올라가서
잠드신 할머니 몰래 냉장고속에 김치통을 넣어두고 내려왔었는데...
그후...
김치통 찾기를 포기하고 한달 넘게 지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어떻게 그 김치통의 주인을 아셨는지...
아파트 옆 공터에 여름내 가꾸신 파 한다발 과 호박 두개를
오늘아침 제집 현관앞에 김치통과 함께 놔두고 가신겁니다.

코끝이 찌잉하고 눈물이 날것 같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이 따뜻한 기분
바로 한달전에 할머니께서 느끼셨을 바로 그 기분 이겠죠?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늘도 높은 하늘을 구경할수 있을꺼라며...
콧노래 부르며 기분좋게 집을 나설수 있있습니다.




2000.9.25. 아침에 다알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