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운동에서 돌아 온 남편이 무언가를 쥔 손을 내민다.
읽고 있던 신문에 끼워 진 광고 지를 펴 주니 쏟아 놓는 게 나팔꽃 씨다.
올 겨울에는 잊지 않고 나팔꽃을 키우겠다고 벼르는 말이 생각나서 받아 온 것이란다.
몇 해 전 늦 가을이었다.
초등 학교 4학년인 딸이 문방구에서 나팔꽃 씨를 사 와서 심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팔꽃은 봄에 심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설득해 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화분을 하나 준비해 주었다.
며칠 후 싹이 나고 속 잎이 나왔다.
덩쿨 같은 줄기도 생겼다.
길이가 50센티 쯤 되는 나뭇 가지를 하나 구해서 옆에 세워 주었다.
금방 쑥쑥 자라서 꼭지까지 닿았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제일 윗부분을 잘라버렸다.
밑에서 나온 새 순이 나뭇가지 끝에 이르면 또 잘라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 겨울이 되었고 햇볕 잘드는 베란다에서 나팔꽃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줄기가 더 자라지 못 하도록 잘림을 당한 나팔꽃은 키가 자라는 대신에 꽃망울을 맺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내내 하루도 빼지 않고 꽃을 피웠다.
시든 꽃을 따 버리고 씨를 맺지 못 하도록 하니 더욱 꽃을 잘 피웠다.
적게 피는 날은 서 너 송이, 많이 피는 날은 열 댓 송이 까지.
그 해 겨울은 나팔꽃이 몇 송이나 피었나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이듬 해 봄이 되어 화려한 봄꽃들로 베란다를 채우면서 아직도 계속 꽃을 피우는 나팔꽃에게 말했다.
지난 겨울은 덕분에 즐거웠다고.
그리고는 몇 해 겨울을 나팔꽃을 키우겠다고 벼르기만 하고 보냈다.
아이들도 자라서 품을 떠났다.
고집쟁이 딸이 보고 싶다.
올 겨울엔 나팔꽃을 꼭 키울 것이다.
고집쟁이 딸 생각을 하면서.
여러가지 편견으로 안 된다는 말을 앞 세운 나도 반성하면서.
내가 때때로 이해하지 못 해도, 겨울에 피는 나팔꽃 처럼 아름답게 필 딸의 앞 날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