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재그로 화폭을 가로 지르는 선이 있습니다.
그 선 위 쪽은 붉은 바탕에 연분홍 줄이 죽죽 벋어나가 있지요.
동 트는 하늘입니다.
아래 쪽은 검은 색이 군데 군데 섞인 어두운 녹색입니다.
기지개 켜며 어두움을 떨쳐내고 있는 산입니다.
산 골짝과 기슭에 희부염한 새벽 안개가 깔려있지요.
그 산 자락에 논 들이 있고 새벽 이슬을 매 달고 더욱 싱싱한 벼들이 보입니다.
물론 사이사이 꼬불꼬불한 논둑 길도 보입니다.
그 길을 초로의 농부 하나가 삽 자루 어깨에 메고 걷고 있습니다.
밤 새 자란 벼를 살피러 나선 길이지요.
그 뒤에 쫄랑거리며 따라 가는 꼬마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새벽 잠을 깨워 데리고 나온 농부의 막내 딸입니다.
내 마음 벽 한 가운데 늘 걸려 있는 한 폭의 수채화입니다.
아버지는 벼 논을 살피러 가는 길에 새벽 단 잠에 빠진 나를 깨워 데리고 다니길 좋아하였습니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따라 나서곤 했지요.
덕분에 살갗에 와 닿는 촉촉한 새벽 공기,
콧 속에 스미는 상큼한 풀 냄새,
발 등에 톡톡 떨어지는 이슬 방울,
새벽 안개 속에 잠긴 시골 풍경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농사꾼의 아내가 되어 시골에서 살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지요.
그렇게 시골을 사랑하던 농부의 막내 딸은 눈에 콩 깍지가 씌어 한 남자를 따라 나섰습니다.
아름다운 농촌의 새벽도 잊어 버리고 콘크리트 빌딩과 아스팔트와 매연에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눈에 씌웠던 콩 깍지도 벗겨졌습니다.
자연스레 잊고 지내던 것들이 다시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습니다.
촉촉한 새벽 공기, 상큼한 풀 냄새, 발 등에 떨어지던 이슬의 감촉, 새벽 안개 피어나던 골짝 골짝, 가슴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워졌습니다.
산 밑에 야트막한 돌 담을 둘러 친 오두막 하나,
돌 담 밑으로 철 따라 피고 지는 이름 모를 풀꽃들,
새벽 안개 낀 산 속을 향해 난 꼬불 꼬불한 오솔길,
그 오솔 길을 따라 손 잡고 천천히 걷는 노 부부,
오솔 길 가에는 노 부부가 가꾸는 꽃이며 나무들이 새벽 이슬을 매 달고 그 들을 반길 것입니다.
뒤에는 듬직한 진돗 개 한 마리가 따라 갑니다.
흰머리 늘어가고 눈이 어두어가는 막내 딸이 그리는 그림입니다.
콩 깍지가 씌어 따라 갔던 그 남자랑 둘이서 그리는 그림입니다.
이 번에는 그 남자 눈에 콩 깍지가 씌어 막내 딸을 따라 나설 모양입니다.
아니면 흰머리 늘고 눈이 어두워가니 막내 딸의 눈에 더욱 두꺼운 콩 깍지가 씌워진 것인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