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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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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나에 관한 단상


BY 이화 2001-09-14

내 오른쪽 발등 위에는 일원짜리 동전만한 흉터가 있다.
다섯살 때 동네 구멍가게에서 달고나
(부산에선 '똥과자'라 함)를 하다가 데인 자욱이다.

어느 날 세상만사 온갖 일에 대한 지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둘째가 나의 흉터를 가리키며
진지하게 물었다. 엄마..그것이 머예요...?

질문을 듣기 전에 아이의 입을 틀어 막았으면 모를까,
일단 입 밖으로 내던져진 아이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날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나의 짜증과 교묘한 말돌림을 무시한 아이의 투정을
이길 자신이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응...그거?
...엄마가 어릴 때 똥과자 해 먹다가 데인 자욱이야......

순간 머루알처럼 유난히 검고 커다란 아이의 눈이 반짝했다.
덥고 무료한 오후 한 때를 채울 수 있는 뭔가를 발견한 눈빛......
나도 앗차...했지만 뱉어낸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아이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똥과자는 어떻게 하는거예요?...부터 시작하여
결론은 예상했던대로 나도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였다.

휴...조심성 없는 나의 입을 꼬매지는 못하더라도
한대 쥐어박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관심을 보인 모든 일에는 철저한 실험과 관찰 그리고
고증이 뒤따라야 하는 아이들의 별난 성격 때문에
나의 육아는 남들 보다 몇 배로 힘이 들었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아이들의 그런 버릇이 에미인 내가
오냐오냐 하며 응석을 다 받아줬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요구대로 하지 않고서는 한날 한시도
조용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체의 비난을 귓등으로 흘리고 그저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내 인생 몸은 고되더라도 마음만은 편하게 살리라 ...
애저녁에 다짐한 나에게 둘째의 번득이는 실험욕이
그리 부담스런 일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먼저 주방 조리기구 중에서 곰국을 풀 때나 쓰는
큰 국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그것을 꺼내 들었다.
아마 오늘 이후로 이 국자는 본래의 소임인 국푸기는
두번 다시 하지 못 할 것이다...

흰설탕을 밥숟갈로 두번 떠서 담고 가스불을 가장 약하게 켰다.
기다란 튀김 젓가락으로 국자 가장자리부터 녹는 설탕을
살살 저어가며 똥과자를 만들자 아이의 입에서 터지는 탄성...

야...언니...이리 와...이것 좀 봐...
엄마가 똥과자 만드셨셔...(기특하게도 항상 존댓말을 쓴다)
언니...(흐느끼 듯) 우리 학교 후문에서
아줌마가 만들어 팔던 달고나랑 똑같애...

정신 없이 책만 보고 있던 큰 애가 책을 휙 내던지고
주방으로 달려 와서는 어...진짜네...
엄마...저도 만들어 주세요... 저는 열번 만들어 주세요......

그러더니 둘이서 손바닥을 마주 치고 폴짝폴짝 뛰며
희희낙락 즐거워 한다.한두판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아
내심 불안했지만 언젠가는 있을 오늘을 대비하여 사둔
소다를 찬장에서 꺼내 국자 안으로 투척하자 아이들은
꺄아...오리새끼 우는 소리를 내지르며 환호한다.

부풀어 오른 달고나를 참기름 바른 싱크대에 탁! 엎어서
조금 식힌 다음 주걱으로 납작하니 눌렀다.
그리고 별, 나뭇잎, 하트 모양의 생과자 틀을
지그시 눌러 찍어 바늘과 함께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소란 속에서도 꿋꿋이 텔레비젼을
응시하고 있던 남편에게도 하나 주었다.
바늘로 모양을 부숴뜨리지 않고 다 오려내면
똥과자 한개를 더 드립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평소에도 쓸데 없는 일에
강한 승부욕을 보이곤 하는 남편의 눈이 번득하더니
바늘 끝에 침을 발라가며 똥과자 한장 더 받기에 열을 올린다.

나는 그 현장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귀한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공짜는 어느 하난들 허투루 생기는 것이 없는 법이다.

남편과 애들은 부숴진 똥과자를 부여잡고 아...하며
아쉬운 탄성을 발하고 나는 또 다른 똥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뜨거운 가스불 앞에서 도대체 몇 국자의 똥과자를 만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중에는 소다를 넣지 않고 설탕 녹인 액체를
그냥 떨어뜨려 동그란 사탕을 만들었다.
일명 '이슬 사탕'-

나중에는 진일보하여 토끼 모양, 하트, 눈사람...
애들이 말하지 않아도 나 혼자 신이 나서
온갖 모양을 만들어 주었다.
다 끝내고 나니 눈앞에서 파란 반딧불이 잉잉 날라 다녔다.

월급 전이라 돈도 없고 돈이 없으니 신명도 없었던
휴일 오후, 우리 가족은 똥과자 한 국자로 유년으로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몸은 귀찮지만 내가 아이들의 부잡한 요구 사항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결국 어른들을 순화 시킨다는 이 진리......

깨끗한 스텐 국자에 정제 백설탕으로 만들어 먹는
똥과자는 아무래도 옛날의 똥과자 맛이 나질 않는다.
너무 엎 그레이드 되어서일까?

찬장 구석에 한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소다통을 보노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 소다가 다 없어질 때 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똥과자를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역시 다른 방법이 없다.
열심히 똥과자를 만들면서 아이들의 관심이 더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해내지 못하도록 혼을 빼놓는 수 밖에.

중년의 티를 내며 나날이 불러오는 나의 똥배도
아이들의 똥과자와 절대 무관하지 않음을
절규로서 밝혀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