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엄마보다도 훨씬 커버린 딸아이를 지난 밤, 아주 많이 혼을 냈다.
갖은 유치한 언어를 들먹여 가며 아이의 기를 죽이려 바둥 거렸다.
아이는 엄마의 기대감에 훨씬 못미친 학원 시험지를 내려다 보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보기 싫으니 엄마 앞에 얼씬 거리지 말라며 소리 소리 질러 대었더니 언제 잠이 들었는지 아이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이가 안스러워 잠시 볼에 얼굴을 대어 본다.
엄마의 욕심이 잘못된 것일까?
정말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혼돈이 인다. 그렇게 어수선한 밤이 깊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더니 사진 하나가 선반 옆에 달랑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아이는 적고 있었다.
"엄마, 그랜드 케넌이예요. 호욱이가 주었는데요, 너무 멋있죠?"
아이는 냉장고 안에서 그렇게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아이의 글이 든 사진을 들고 난 한참이나 서 있었다.
지난 밤, 아이에게 난 어떤 짓을 했던가?
아득해 지는 자신을 추스려야 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 전 세상이 보고 싶어요!"
아이는 끝없이 목말라 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 이국의 낯설은 도시에서 풍기는 여행지의 냄새를 아이는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끝없이 여행 가자며 졸라대던 아이였다.
그런데 아이가 원하는 그 무엇도 해 주질 못한 채 아이를 교과서의 형편없는 숫자 속에 가둬 놓고 있었던 게다. 그래 놓고 엄마의 욕심을 채워놓지 못했다고 아이를 닦달하다니. 얼마나 몰상식한 엄마인가 말이다.
딸아이는 그래도 엄마를 향해 웃고 있지 않은가!
아이는 참 맑았다. 하얀 도화지보다도 더 아이는 맑고 밝다.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말끔히 쳐다보던 너무도 앙징맞던 아이의 어릴적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아이의 눈에는 평화만 있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낸 어둡살은 어디에도 없었다.
난 아이를 어디로 몰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아이의 독특함으로 가득 메꿔져야 한다.
엄마는 그저 지켜 볼 뿐이다.
주인의 입맞에 맞게 다듬어져 가는 정원수가 아니라 세월을 두고 비바람을 우뚝 홀로 견뎌 내어 제 모양, 제 빛깔을 남김없이 드러내며 가지를 우람차게 뻗어 가는 드넓은 대지의 큰 나무로 아이가 자라가길 애오라지 기도하며 지켜 볼 뿐이다. 그것이 엄마인 내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