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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내 어머니..


BY 도영 2003-06-20

어머니..엄마..엄마..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베겟잇이 촉촉히 젖어 있더이다.
화장대 앞 거울을 들여다보니 눈에도 눈물자욱이...
아!그래 밤새 엄마 돌아가신 엄마가 꿈속에 나타나셧지.
꿈을 가만히 더듬어 보니.아마 엄마를 부여잡고 하염 없이 울엇던거 같습니다..

엄마라는 단어가 그리을땐.엄마..하고 읖조려 봅니다..

어머니..내어머니.
그분은 처연한 일생을 살다 가셧습니다.
환갑을 조금 넘긴 연세에..10여년을 모진 병마에 처연한 인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신지 오년여..
엄마 묻고 포항으로 떠나는 기차안에서 어제 만든 엄마의 봉분과 흰 국화꽃이.차창밖으로 서서히 멀어지더군요.

멀어지는 엄마의 무덤과 눈이 시릴만큼의 흰 국화 꽃이 아직도 내 뇌리속에 선명히.
각인되어 이따금씩 나를 서럽게 만듭니다.

내어머닌 완벽한 여자였습니다.
훤칠한 외모에 솜씨 맵씨 지성까지 갖춘 신여성 이였습니다..
아버지의 주먹구구 사업으로 거듭되는 사업실패.생활고..
육남매를 키우시던 내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어릴적.초등 4학때. 여선생님이 제게 특별한 관심을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와이셔츠로 만들어 입힌 내 흰 원피스를 보고 선생님은.감탄 하셨습니다.
그만큼,어머닌 바느질 솜씨와 음식솜씨가 대단하셨습니다.

한복을 만드시면 얼마나 정확한지.자투리가. 한뼘도 남지않는 철저함.
맛깔스럽고 정갈한 음식솜씨.항상 우수에 젖은듯 어머닌 말이 많지 않은 분이셨습니다.늘 책을 보시고 한자 공부를 하시고 항상 엄마의 손엔 뜨게질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한번에 결혼 실패를 하셨다고 합니다.

스무살 시절에 그 비밀을 듣는 순간 전 망치로 얻어 맞은 기분이엿습니다.
한동안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볼수가 없었습니다.
육남매중 나만 아는 비밀..

어느날 엄마한테 물었습니다.재혼 여부를..어머닌 놀라는 눈치셨습니다.그리고
어머닌 옥상으로 저를 데려 가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연들을 ..토해내듯 하셨습니다.

6.25사변 발발 몆년전.
입하나 덜자고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끼니걱정 안하는 집으로 시집을 보내셧다했습니다.
그 시절이 엄마는 가장 햏복했다고 술회 하셨습니다.
6.25 전쟁중 어머니는 징용간 남편의 전사 소식을 접했다 합니다.
홀시아버지 모시고 얼마쯤 사셨는데 시아버지께서 며느리를 보내시더 랍니다.새인생 살라고.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신 어머니는 가수 최희준 씨 본가에서 침모로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친정 아버지를 만나셨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내어머닌 내가 보아도 어떤 면에서건.도데체과 맞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매사에 완벽하고 똑똑한 어머니와 대강대강 적당히 사시는 아버지..꽃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꽃밭을 애써 만드시면 아버지는 채소 심는다고 뒤엎어 버리곤 했답니다.<채소도 심지 않으시면서>ㅎㅎㅎ
아버지는 똑똑한 어머니가 부담될수도 있엇을 겁니다..

지금도 아버지가 엄마한테 싸우면서 한말이 생각 납니다.
아버지의 명언!하하하.<요부분에서는.웃음이 나오네>ㅎㅎㅎ


"집구석이라고 들어오면.변또<도시락>속에 들어온것처럼 답답하단말야!!"
아직도 나는 형제들한테 아버지의 변또 이야기를 합니다..그말이 어린 가슴에.박혀 있었나 봅니다.ㅎㅎ

육남매중 셌째인 나는 엄마와 가장 친햇습니다.
엄마를 가장 많이 이해햇고 엄마의 고생을 가장많이 안타깝게 여긴 딸이 저였거든요.
남동생 낳고 몸조리를 못하셔서 늘 아픈 어머닌.몸조리용으로 낳으신 내여동생<36세>을 지그아버지하고 똑같다고 한번씩 그러셨습니다.몸조리용으로 낳은 막내딸이 돌아 가실 무렵에 가장 옆에서 지켜줄줄은 어머닌 그당신 모르셨겟지요..

지금도 막내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33세>은 우리둘은 몸조리용으로 세상에 태어 났다고 우스갯 소리로 하면서.
엄마가.오랜 병마의 고통으로 힘들때,,막내딸과 막내 아들이 큰위안이였다고 합니다.
여동생이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

"언니야 언닌못봐서 그렇치 토욜일에 허겁지겁 집에 달려가면 캄캄한 방에 티비만 켜노고 웅크리고있다가 막내딸 오면 엄마의 얼굴이 순간적이나마 생기가 도는 엄마였어"

전 동생의 말을듣고 멀리 시집와서 엄마의 아픈 모습을 차라리 안 본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캄캄한 방에 티비와 오랜 병마에 고통에 쩔은 일그러진 내 어머니..모습이 상상이되서 눈물만 뚝뚝 흘렷습니다
정신이 돌아오시면 어머닌"내가 너희 둘을 낳기를 잘했네잘했어.도영이 멀리 있지 .너네 없었으면.."말끝을 흐리더랍니다..

글이 넘 길었군요..
너무나 완벽하고 똑똑해서 사랑을 받지못한 내어머니..
당신보다 월등하다고 자격지심에 평생을 어머니를 무시한 아버지..
어머니 가시고 지금....
아버지는 후회에 빛이 역력 하십니다.


언젠가 포항딸네 오셔서 내 시아버지께 하시던 말씀..
"안사돈 계실대 잘하세요..안사람 없으니.개밥의 도토리더라구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영감타구..살아있을때 잘하시지.""

지금도 미운 아버지를를 쏘아보고 제가 중얼 거린 말입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말이 생각 납니다..어쩌다  귀한 계란이나 과일이 생기면

"난 계란도 귤도 사과도.별루야.."

정말 내 어머닌 그런줄 알았답니다,
돌아가신다음에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게..귤이랑 사과였다는군요..

엄마...낼 모레..엄마 제사네..귤하고 사과하고 사서 엄마 산소에 갈께.

 

엄마..나 엄마 이따만큼 사랑하고 그리고 엄마 어제 꿈속에서만나서 참말로 좋았어..

이따금씩..내꿈에 나타나줘 엄마..

자주 나타나면 내가 울어 눈이 부으니.출근 하는나 지장있으니

이따금씩..응??엄마....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