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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34

중요한 거~ㄹ


BY hansook83 2003-06-17

군대간 아들녀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2번 씩이나.

어제 아빠 연주회 잘 하셨나요?

녀석은 요새 아침먹고 풀베고, 점심먹고 풀베고, 저녁먹고 풀베고...
눈뜨고 있는 시간이면
따가운 햇빛과 잦은 비로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아
무섭도록 잘 자라나는 잡초 제거하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네요.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녀석은 항상 남보다 두각을 나타내니
그결과 6월말에 있을 3박4일이던 휴가를 6박7일로 늘려놨다네요.
안그래도 되는데...

그 와중에도 연주회 날짜를 잊지 않고 전화를 해준겁니다.
기특헌 녀석 같으니라구.

저녁무렵 녀석에게 또 전화가 왔습니다.
1541에서만 나타나는 그 짧은 기다림 속에서도
별 망칙한 생각이 다 스칩니다.

왜 무슨일 있냐?
아니 그냥 시간이 좀 남았길래.
공부좀하지. 공부한대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수학은 1학기거 거의 다 끝나가요.
장하다 내아들

공부해야할 그 시기에 공부하라고 낯설은 잔소리좀 할라치면
책상에 앉는데 10분
뒤이어 의자 삐긋대는 소리,
볼펜 돌리다 떨어뜨리는 소리,
귀에는 이어폰 꼽고 입으로 흥얼대는 노랫소리,
앞뒤 페이지만 살피는지 계속되는 책갈피 넘기는 소리,
인내심이 항상 부족한 나에게는 너무 큰 고문이었지요.

그런 녀석이 공부라 이름붙은 일을 한답니다.

근데 엄마 부탁이 있는데요.
제가요 휴가 나가서요 중요한 거~ㄹ을 만나야 되거든요.
근데 그 중요한 거~ㄹ이 남산타워를 가고싶어하잖아요.
거~ㄹ은 안산에서 사는데
그래서 차좀 빌려주세요.

나쁜 노-ㅁ
그러면 그렇지.

녀석은 휴가나올때마다 나를 한번씩 뒤집어 놓고 갑니다.
안산에서 살다가 녀석이 군대가고 난 후
서울로 이사온 까닭에
녀석의 친구들은 모두 안산에서 살고 있거든요.
그래 매번 휴가나올때마다 차를 가져가겠다고 합니다.
친구만나 하는 일이 항상 정해져 있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지
매번 저도 찜찜, 나도 찜찜하게 기분만 망치는 데도 말입니다.

야-ㅁ 마, 남산은 원래 걸어서 데이트하는 코스야
남산에 올라갈 수록 발밑으로 내려가는 서울 야경을 바라보는게
제 맛인거야.

그래도...
중요한 거~ㄹ 만나는데.
차로 태워다 줘야 하는데...

꼴의 값이나 알고 하는 말인지 원.

말이 자가용이지
10살이 다 되가는 나이에
자갈밭을 평지처럼,
프라이드가 코란도로 둔갑하게 몰고 다니는 내 운전 실력에
겉모양은 이미 오래전에 여기 저기 만신창이가 됐는데
뭐 그리 자랑하고 싶어
차를 끌고가려하느냐 말입니다.
그것도 서울 야경을 보려고 하면서
지리도 모르는 녀석이 차를 가지고 가겠다니..

너 휴가 나오지말고
너의 대대장님 보호밑에 있어라
감당할 자신 없다.

나쁜 노-ㅁ

이젠 휴가 나오기도 전에 미리
내 속을 뒤집어 놓네요.

허긴 나 같았으면
미리 말안하고
휴가나와
차 키 가지고 나갔을 겁니다.

아무리 아들을 야단 치려해도
내 부모 속 썩인 것이 생각나
야단 칠 수가 없네요..

아들아.
휴가 나올때까지
건강하게 근무 잘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근데 남산은 걸어서 데이트 하는게 제맛이야.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