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재촉하면서 달려온 자연의 소리에 놀라
꼬리를 잘린 늦봄은 원망도 없이 이미 싱그러운
녹음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풍요로운 가을을 갖기 위해서겠지요.
오늘도 벌써 쇳물을 토해내는 용광로처럼
아스팔트를 녹일 듯 사정없이 태양이 달려 들었지요.
밤나무의 꽃가루가 노란 빛으로 바람을 타고
지붕 위로 날아 다니고 있구요,
한적한 시골담장밑에는 연분홍 접시꽃이
소롯이 가지마다 매달려 있습니다.
긴 모가지를 키 올려서 담 넘어 올라 와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동글하고 납작한 접시마다
긴 사연을 엮어 놓은 듯이 피어 있는 접시꽃
접시꽃은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해진 꽃이죠.
가난한 시인의 아내가 아기를 가졌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내는 암 선고를 받지요.
치료를 위해서는 아기를 포기해야 하지만,
아내는 끝내 새생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나고,
아내는 고통 가운데 죽어 갑니다.
매일 아내의 무덤을 찾으면서 써내려간 시,
그런 시를 모아서 접시꽃 당신을 펴냈습니다.
접시꽃을 보면서 우리의 죄를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 생각이 납니다.
우리에게 순결하기를 원하셨고
사랑하고 살라하셨고
그러다가 피 흘려 돌아가신 그분,
하얗게 분홍으로,그리고 빨갛게 피어 있는 접시꽃이
많은 생각을 갖게 해 주는 6월 또 한주간이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