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너 빨리 집으로 와 봐라~!아버지랑....."
당황에 찬 어머님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내게 들리는건 아버님의
노기에 찬 목소리였다.
"가게는 어쩌구요? 오토바이도 없는데요.!"
어정쩡하게 전화를 끊고 지키던 가게에서
자주 올려 보던 벽시계는
아무래도 밧데리를 교체해야 할때가 되었는지
긴바늘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유난스레 길었다.
집안 분위기를 염려하며 들어선 거실에 아버님은 안계셨다.
열시가 넘은 것이다.
조심스레 주방을 들락거리며 내일을 준비해 놓고
아들 방으로 들어섰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불빛으로만 채워진 아들들의 방은
가뜩이나 좁은것이 더 좁아 보이다가
내가 들어서며 스위치를 누르니 넓어진다.
작은 아들이 털 부숭부숭한 긴다리를 짧은 반바지 아래로 내놓은 채
침대위에 누워있다가 부시시한 눈으로 일어나 앉는다.
방바닥에 벼게를 끼고 모로 누워
영화를 보던 큰아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채로
뒷걸음질쳐서 작은아들이 누워있는 침대 모서리에 몸을 앉히며
나는,큰아들에게 무슨말인가를 기대하며 내려보지만 묵묵답이다.
"야~! 너, 아까....~"
"알았어요, 하지만...."
내가 채 내용을 펴기도 전에 아들은 이미 접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아들의 어미여서 그랬을까?
조목조목 낮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아들에게,
나는 늘상처럼 했던말을 또 한번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께 하는 바른말은 말대꾼 거 알지?
무조건이야, 할아버지나 할머니께는...못하겠음 네가 나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 큰아들이
요즘들어 자주 아버님 비위를 건들고 있는가 보다.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로 하루를 보내시는 아버님께
잔뜩 늘어 놓고만 다니는 큰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건 당연한일이고,
누구의 영역도 허락 하지 않으시는 할아버지로부터
자기 영역안엔 누구의 흔적도 싫다는 이기적인 아들이 집안에 큰소리를 만들고 있다.
"야~! 나, 네게 할말있다~!"
급하게 나오려는 어제 아침,
쇼파에서 표정굳은 아버님이 나를 세우신다.
"나, 영규랑 못 살겠다. 내가 나가던지....."
"그놈의 자식이... 혼내켜 주세요. 막 패줘요. 걱정마세요. 다음달이면 내쫓을 거예요.서울로 보낼께요."
나는 며칠전 아들이 내게 얘기하던 말이 생각나서
단번에 아버님의 표정을 바꿔 드리곤 스쿠터를 몰고 나왔다.
다행이도 회복이 빠른 아들은
다음달쯤에는 다시 직장으로 복귀해야겠으며
가자마자 수영장부터 알아 볼거라며 살고 있던 원룸을 임대료가 싸고 넓은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었다.
그애에게 나는,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집에서 제때 밥먹으며 좀더 운동하는게 인생에선 큰 이익이 될거라고,
조급함이 들어 있는 아들의 마음을 가라앉혀 줬었는데....
온종일 마음 한구석에 돌덩이가 들어 앉아 있었다.
"크락숀 소리나면 내려오세요."
"응, 알았어~!"
아버님의 목소리가 밝으시다.
며느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려와 기다리고 계시다가
차 뒷문을 열고 알타리 다듬은것 한보따리와
상추 뜯은것 한봉지, 파 솎은것 한봉지....
전부 내려 놓으시고 나보곤 그냥 올라가라신다.
친정엄마가 챙겨주신 작은 보따리는 가짓수도 많다.
아픈 허리때문에 무거운것 못드는 이 며느리.
가벼운것 두어개 챙겨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여든 넘으신 아버님,
무거운것 들고 나를 앞지르신다.
어느새
엊그제 일을 까마득히 잊으신 아버님이 고맙다.
그 많은 나이에도 건강하신 아버님,
며느리 말이라면 즐겁게 들어 주시는 아버님,
며느리가 하는 모든일을 믿어 주시는 아버님,
내게 할말 있다며 심각하게
아들 혼내킬것을 강요하시는,
가끔은 한없이 어린애같은 나의 시아버님이,
가만히 앉아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