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자기 생일이라고 생일날 휴가받아 집에서 쉬는 남자를 볼때.
2.술마시고 앞니 서너개와 코빼 뿌러져서 피 철철 흘리고 집에와서 잘 가는데 멀쩡한 아스팔트가 각제 일어나서 자기얼굴을 요모냥으로 맹글었다고 우기는 남자를 볼때.
3.술취해서 집을 몰라 집 주위를 자전거 타고 집앞을 지나가길래 어데가냐고 물었드만 어...하더니 아이스 크림 사러 간다고 둘러대는 남자를 볼때.
4.술이취해 아파트 현관 반대쪽으로 가길래 5층 아줌마가 어데가냐 물엇더니 흠집 놀라 \"\"아네네..싸나인 대로로 가야죠..암요.,\"\"이래 말하는 남자를 볼때..
5.술이 떡이되어 집을 못찾아 옆집 건물 옥상에서 자고 외박 햇다고 마눌한테 귓싸대기 맞은 남자를 볼때.
6.부부관계 횟수를 꼽으면서 일주일전을 열흘전이라고 아내에게 우기는 남자를 볼때.
7.안방에 달력 구해 가지고 와서 동그라미 치면서 횟수에 턱없이 모자르다고 따지는 남자를 볼때.
8.술 취한 남편 데리고 가라 통지받고 현장에 가니 집에 안간다고 뻐삐뎌서 술집가자 살살 곯려 아파트 주차장에오니 술집 아니라고 대로에 벌떡 눕는 남자를 볼때. 구엽고 우습다..헤~~<절대 울 옆지긴 아님..절대!>
9 화이트데이도 발렌타이데이도 여자에게 사탕과 쵸콜코렛 주는날이라햇더니 그대로 믿는 남자를 볼때.
10.옆에 오는걸 거부 했다고 한잔 꺽꼬 새벽 두시에 새로산 식기 건조대 거실바닥에 때기장 치고 씩씩대며 분해 분해 잇빨 가는 남자를 볼때.
11.술집가서 묻혀온 티셔츠에 립스틱을 도장 밥이라꼬 능청스레 말하는 남자를 볼때 구엽다..
12.꼴보기시려 애들방 문걸어 잠그고 자는데 새벽녁에 세탁기밟고 창문 타넘고 오는게 도둑 인줄알고 잠결에 숨 죽이고 다시 보니 그것이 남편일때..기가차 다 몬해 구여워서 패고 싶다.
싱거운 도영..
시어머니의 \"방 구해 봐라\"그말에 아침 밥 숟갈 놓기가 무섭게 냅다 종점으로 버스를 타러가는 도중 종점 앞 문구사 아줌마한테 들렸다..일찌기 남편과 사별을 하고 세아들을 문구사를 해서 키우는 집안 인척인데 점잖으면서 덕을 갖춘 40대인 아지매였다 평소 내가 한번씩 지나가면 불러서 말동무를 해주던 아지매라..며칠전 시아버지와에 사건도 있어해서 부끄러워서 그냥 지나칠려다 문구사로 들어갔더니 아휴..하면서 반겨주셨다.
\"며칠전 저의집 시끄러워서 소문 다 났지요?안그래도 부끄러워 죽겠어요..\"햇더니
문구사 아지매는\"별소릴...그날 새댁 날리치는거 듣고 다들 그러더라구요..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던데.오래참았지..하던데...걱정말아요..근데 어디가우?\"
드디어 분가하라고해서 방얻으러 간다고 하니까 손뼉까지 쳐가면서 나의 분가를 당신 일인양 좋아하셨다. 버스를 타고가면서 언제 봐도 공원같은 사원 아파트를 보면서 4년전 첫 인사 올때 이길을 떠올렸다..밤색 우단 스커트에 노란 앙고라 스웨터를 걸치고 단발머리 팔랑대며 엄마와 함께 남편을 따라 지나오던 이길..시집살면서 사원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저 여자 들은 나보다 어디가 잘나서 저런 아파트에서 살까..나도 저렇게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남편과 나들이 가고 싶었는데..잠시 상념에 젖어들다보니.어느새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정거장에 다온것였다.
남편의 직장에서 제일 가까운곳 ..내수중에 들고있는 돈으로 방을 얻을수 있는 값싼 방을 고르기위해 다시한번 버스를 갈아타고 다리를 건너서 한귀퉁이에 방을 얻고 시댁으로 다시와서 짐을 쌌다. 마침 방이 비워져있어 이튼날 이사가 가능했기에..짐을 꾸리고 있었고 아버님은 나를 외면하고 나역시도 아버님께 이러타할 제스처를 쓰지를 않았다.
이사를 하던날 살림나간다는 나를 위해서 옹기종기 모여살던 시숙모와 아지매들이 종 시동생들을 보내주셨다.당시 고시공부하던 되련님..막 제대한 잘생긴 시숙모 아들인 찬이 되련님..취업준비를 하면서 쨤을 내어 와준 말없기로 유명한 혁이 도련님들 댓명이 달겨들어 짐을 트럭에 옮기는데 채 한시간도 걸리지가 않았다.
트럭을 먼저보내고 시집을 빠져나오는데 착찹함이 밀려왔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집이 였지만 한바퀴 삥둘러보면서 뒤란으로 갔다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설겆이를 하다보면 보이는 장독대 그리고 그 뒤에 무성한 대나무숲..부엌에서 설겆이 하다가 깨진 사기 그릇들을 어머니 몰래 던져버렸던 대나무 숲은 사그락 대며 나와 이별을 고하고 있는듯했다.
내가 슬프거니 노할때 밥그릇에 눈물 섞인 밥을 부어주었던 누렁이는 밥그릇만이 찌그런채 주인없는 개집안에 놓여있었다 작년에 아버님이 누렁이를 잡으려고 밤 나무를 지나 산 아래로 끌고 가던날 나는 며칠을 누렁이에게 그렇게 미안할수가 없었다 개 줄에 묶여 안따라 가려고 자꾸 나를 보고 또 뒤 돌아보던 그 누렁이는 몆 시간후에 삶아져서 냉장고를 채웠을때 나는 몆날 며칠 굶다시피 할정도 입맛을 잃었었적이 있었는데 누렁이 집앞에서 누렁아 나도 이집을 떠난다..그때 널 못구해준거 미안했어 야..안녕..작별을 고했다 ㅎㅎㅎ
밤나무 그늘 아래 평상을 지나 시집을 나와 논둑길을 걸어나면서 내나이를 짚어보니 스무여섯살이 먹어 있었다. 방 한칸에 장농. 화장대. 서랍장 겸 차단스 책상.냉장고까지.들여놓고 나니 우리 네 식구 겨우 발뻗고 누울 공간만 남아 있었다.그래도 좋았다 .새벽에 5시만 되면 탕탕 문을 치며 일어 나라고 깝치는 시 부모님이 없으니 얼마나 오랫만에 취해보는 숙면인가.방이 좁으면 어떤가.부엌문 앞 니나노 집 술집에서 밤새도록 젖가락 두들기며 홍도야 우지마라 를 열창을 하는 노래소리가 새벽녂까지 들리면 어떤가.볶끼지 않아서 살거 같거늘..
연탄불에 냄비밥 해먹고 곤로에 국 보글보글 끓이고 그릇몆개 씻고 나면 십분만에 끝나는 설겆이 시간..남편 출근뒤에 일분이면 다 닦는 걸레질을 하고 애들 끌어안고 자는 낮잠이 처음에는 무척 낮설었던 나..이제는 시아버지 술주정에 가슴떨릴 일도 없었고 어머니에 일거수 일투족 감시에 눈길이 마음 쫄던 일도 없어졌다 그집에서 6개월을 살면서 잠만 자는 일이 하루 일과 였다 4년동안 축척된 피로는 자도자도 쉽게 풀리지가 않았다.그때 해방감은 두고두고 내감성의 얹저리에서 머물러 있으면서 환희를 느끼고는 했디라..
살림나고 보름쯤 지나니 까칠했던 얼굴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메말랐던 화분에 물을 흠뻑 주면 싱싱하게 살아나는 잎사구처럼 내 얼굴에는 윤기가 돌기 시작했으며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살림 난지 며칠후에 시댁에 뵈러 가니 아버님은 반가운척 하려다 안 그런척 외면하고 보름후에 어머니가 다녀 가시고 아버님이 얼마 안있어 다녀가셨다 그리고 나는 시댁에를 일주일에 한두번은 버스 두번갈아 타 고 애들 업고 걸리고 찾아갔다 이건 누가 시켜서 그런게 아닌 그래야 되는줄 알았기에 그랬다 그집에서 6개월을 살았나..시댁 동네가 철거되는 바람에 시댁도 이제 농사를 그만 짓고 촌에서 시내로 나와야만 했다.보상금도 웬 만큼 받은 어머니는 가난했을때도 믿는구석도 없이 기고 만장 했는데 돈을 손에쥐고 나니 더 교만해져갔다. 어머니는 큰 시동생을 장가 보내려고 여기저기 선을 보러 다는데 항상 나를 불러 앞장세워 다니셨다.
상대가 별루거나 우리 보다 딸려 보이면 노골적으로 무시 하는 태도를 보였고 옆 에서 보는 나는 상대 보기에 민망 해서 왜 저럴까..안타까워 미칠노릇이였다.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금에 내 바로 밑에 동서가 들어왔다.나하고 한살 차이 나는 이 동서는 친정이 한참 시골이였다 어머니가 평소 하시던 말씀중에 둘째 며느리는 나처럼 약한 도시 매느리 안보고 일 잘하는 시골 매느리를 볼거라고 하셨는데 어머니는 소원 성취를 하신셈이였다.
큰 시동생의 결혼날짜를 잡는 과정에서 동서에 친정 부모님과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물론 시부모님과 같이 말이다..동서의 친정 부모님은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 답게 순박하고 말 주변이 별루 없는 조용하신 분들이였다 이 사돈들이 가만히 보아하니 우리 시아버지는 왈왈 거리며 시끄럽지를 어머니는 내 아들이 점심값 낸다는 우쭐내지는 심숨궂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딸에 맏동서 될 나는는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이 앉아 있는게 웬지 나에게 믿음이 간 모양 이였다..점심을 먹고 내가 인사 하려 저만치 따라 가니
\"저기 내 딸 주는거 맏동서 보고 결정 한겝니다..잘부탁 드립니다..\"의미 심장한 말을 하고 가고난후 결혼식을 올리고 동서에 친정 아버지를 첫 시가 오던날 뵐수 있었다,
집과 밭이 철거가되어 보상금은 받았지만 시내에 집을 짓고 있는 중이라 내가 살던 방에 동서가 서너달 살기로 했다 같이 살아야 정이 들고 시댁 가풍도 익혀야한다면서..
속으로 나는 정?살아봐라 있던 정도 달아 날라.. 가풍?며느리 학대하는 가풍?하며 쾌재를 부르면서도 동서가 걱정스웠다..시동생들은 내가 참고 살때는 안쓰러워 챙겨주더니 못참고 분가를 하고 싶어하니 어머니한테 몬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냉정하게 대했다 물론 시동생들 중 큰 시동생이 \"형수도 따로 살아봐야지..\"약간 응원을 해줬긴 해줬지만 그래도 살아 봐야 형수 속을 알거 아이가.
딸을 데리고 사돈 집에 오시기 직전 동서 살림이 먼저왔는데 트럭이 썰렁한것을 본 어머니는 표정히 쌩 해져갔다.경상도는 장농을 시댁에서 해주는 풍습이 있는데 나는 강원도라 몰랐고 동서는 경상도 사람이라 장농을 당연히 안해왔으니 장농없는 트럭이 썰렁밖에
내 절값으로 2만원 모아 주었던 시댁 어른들이 방을 꽉 채운 가운데 동서와 친정 아버지가 택시에서 내려 시동생과 걸어오고 있었다.동서는 색동저고리를 입고 걸어오고 있는모습이 그래 이쁘고 반가울수가 없었다 내 편이 들어 온거였으니 반갑지 안반갑겠나..
이바지이 음식이 들어오고 부엌에서 그것을 풀고 살피던 어머니는 갑자기 사돈이 계신 내 방이였던 창문 아래로 득달같이 달려 오더니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우째 !!딸을 시집보내면 서 친정 아버지라는게 ~!술한병 안사왔노!!뜨그럴..@@@\"
순식간에 내 뱁은 말이라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이러했다.동서 친정에서 이것저것 싸다가 고만 정종병을 빠트렸나부다.나도 띵했고 와글와글 거리던 집안 어른들도 띵한 눈치였다 누군지 아지매가 뛰어 나와 어머니를 뒤란으로 끌고 나가\"형님요 술병이 빠졌으면 조용히 큰 질부<나>를 불러 사오라하면 하면 될것을 이 난리 칠게 뭐있는겨.참말로\"그제야 어머니는 승질가라 앉히고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 친정아버지 심정은 어떠하겠나.동서 심정은 또 어떻켔구..친정 아버지는 밥을 코로 들어가는지 입 으로 들어 가는지도 모르고 한술 뜨는척 하다가 딸을 둔채 그렇게 사돈집을 나오면 울고 갔다고 나중에 동서가 말해주었다.
그런거 보면 내 친정 부모는 만만히 보이지는 않았나 부다 하긴 우리 엄마 말빨이 보통인가 ,우리 아버지 카르스마에 네네.하던 것과 다르게 시 부모님이 촌 사돈한테는 그렇게 한것이였다 당신들도 농사꾼이였으면서도...
시집 첫날 친정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고 동서는 그날부터 마음이 닫혔다했다.
나는 그래도 살아 남으려고 없는 애교 만들어가며 노력을 했건만 동서는 천성이 곰과 여서 나 처럼 적당히 비위마추려 않은탓으로 그후에 숱한 미움을 사서 신경성으로 몆년전 까지만 해도 진단도 안나오는 홧병으로 한오년 앓아 누워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강 심장은 맞는기라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큰 시동생이 총각 때 술을 많이고 논탓인지 시름시름 아파왔다 시 동생 아픈게 동서 들어 오자마자 그랬으니 들어온 사람이 잘못 들어 왔다며 동서가 범띠라서 그런거다고 뒤집어 씌우기시작했다.아니 사주단자 올때 범띠 인거 알았고 궁합 마춰보고 좋다고 해서 했거늘 어머니는 하루는 점을 치러 갔다오더니 \"범이 입을 딱 벌리고 우리 아들 잡으먹으려 하고 있다고\"점쟁이말에 동서에 명암이 달려있었다.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한다고 낫나.. 푸닥거리를 했지만 정밀 조사 끝에 총각때 많이 마신 술 때문인지 간이 안 좋았고 녹내장으로 그렇게 머리가 아픈거였다.후에 알고보니 어머니도 범띠였고 녹내장은 어머니 한테 받은 유전이였으니..
동서가 기가차서 자리보존 안하게 생겼는가.더군다나 동서는 시댁에서 걸어서 십분거리를 십년 넘게 살았으니 동서가 받은 스트레스는 내속이 부글부글 거려 생략 하겠다
보상금이 나오고 나는 돈앞에 초연해지기로 했다 돈 앞에서 시동생들이 설치는게 왜그리 보기 싫었는지 우리부부는 해주세요 다 해주세요..집도 사주고 가게도 채려주고 다 하세요.오히려 거들었다 그렇게 시동생들 몫 나눠주고 우리는 단칸방에 사는데도 전세 옮겨줄 생각은 커녕 은근히 다시 들어오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러더니 하루는 아버님이 부르시어\"야야..니 냄비밥 해먹고 한반년 살았으니 인쟈 됐다 다시 들어오거레이..\"그때 남편이 활약을 좀했디라 \"막내까지 다 장가가면 들어올끼요..\"
이렇게 해서 겨우 타낸 전세금으로 이층독채를 얻어 갔는데 새로짓는 시댁과 오분거리지 않은가..아니나 다를까..나날히 어머니 아버님 들이닥쳐 감놔라 콩놔라 하시는데 나중에는 초인종 소리가 목욕탕에서 머리를 감는데도 환청이 들려왔다 오전에 아버님이 초인종을 제대로 누르지 못할 정도로 .술에 쩔어 밖에서 문열으라고 소리치면 뛰어나가보면 대문 늦게 열었다 가스나 어쩌구하는데다가 아버님 가시고 나면 어머니가 들이 닥쳐 며느리 방에서 못자 죽은 귀신 있는지 코 까지 골며 자고 있다 보면 아버님이 다시 비틀거리며 어머니 찾으로 오시구..다시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곳이 지금 내가 20년 가까히 사는 여기다.
그래도 동서가 들어오니 시부모님들이 많이 좋아졋다
시골 매늘 봐서 맏며느리 보다 일잘하는걸 볼라 했는데 애들 엄마인 나하고 동서가 비교가 되나 워낙 많은일에 적응된 나 여서 애도 없는 동서가 맏 며느리인 나의 일폼새를 능가 하겠는가.어머니의 예상은 빗나가고 시부모님은 둘째 며느리를 보고서야 나 에게 조금조금 숙여가고 있는 와중에 세째 며느리를 볼려고 여기저기 선 자리를 찾아보는거였다.
그리고 세째 며느리를 남편이 소개해 주어서 장가를 가는가부다 했는데 혼수 문제로 또 한번 세째 동서 친정 부모님의 눈물을 쏙빼는 일이 생길줄이야 또 진정난 몰랐었다.
<다음에.
남편이 둘째 제수감을 직접골라 중신을 선다 했을대 내심 나는 불안했다 바로 내 아래 첫동서 중신서준 분이 어머니의 사촌 언니였는데 중신서 준후 어머니한테 오지게 당하고 서로 안보는 상황이였기에 또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는 보장도 없지않은가. 그래도 인연이라면 내집사람이 되겠지 하고 놔두었고 시동생과 남편이 소개해준 처자가 내 둘째동서가 확실시 되어가고 날을 잡고 일이 잘 진행되었다 시부모님을 설득해서 동서가 살집도 분양 받아놓고 양쪽 부모가 예물과 예단을 하기로 하고 당연히 나도 따라가야만 했다 예물 예단 하던날 공평 하게 주고 받고 이번에는 예물 예단 문제로 문제가 안된거에 내심 안심을 하며 마지막 남은 한복집을 들렸다 하긴 내시집올적보다는 노인네들이 많이 깨였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들어간 한복집은 동서 둘째네 아는집이라해서 아는데가면 더좋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다.두루마기도 고르고 색깔도 고르고하다보니 한복집 주인이 시어머니 한복보다 친정 엄마 되는 분에 한복을 골라주었는데 가격이 돈 만원 차이가 났다 여기서 우리의 대단한 시어머니가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안다고 일부러 데리고 와서 내거보다 더 비싼것을 권했능교!!둘이 짯꾸만..앙??앙??시장바닥에서 흥분한 어머니는 장소도 무시하고 사돈될 사람들도 무시한채 발을 딱딱 굴려가면서 얼마나 심했던지 평소 한마음이였던 시아버님이 어머니를 뭐라하자 어머니는 안정이 되어갔다 나는 너무 송구스러워 둘째동서 부모님을 보니 저만치 피해서 골목에 계셨다..동서는 어이 없는지 정신이 멍하고 둘째 시동생은 기억이 잘안난다.
나는 둘째동서에 부모님에게 다가가니 친정어머니는 털썩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셨고 동서 아버지는 줄담배만 피면서 콜록대고 있엇다.
\"저..죄송합니다..대신 제가 사과드립니다..죄송합니다..\"
평생을 농사만 지으면서 겸손하게 사신 둘째동서 부모님은 날은 잡아놓았고 청첩장은 돌렸고 이 결혼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이 역력했다. 물론 결혼을 깨지않고 시킨것은 맏며느리가 아닌 세째며느리니 따로나가면 되겠지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이충격으로 둘째친정엄마는 그날부터 몸져누워 3년을 고생을 했다한다..동서가 나한테 해준말이다
시장바닥에서 그 난리를 친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기전 나는 시어머니한테 \"어머니..이중신 아범이 해준건데 ....둘째동서 될사람의 오빠가 아범에 직장 상사인데..아들얼굴에 똥칠한거라고 바른말을 했떠랬다.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남편 은 결혼식날까지도 중신 서준 죄로 속을 속을 섞이다가 순둥이 아들이 드디어 화가났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혼식을 마친후 신행을 간사이에 남편과 시부모님과에 아슬아슬 긴장감이 현실로 다가왔다.결혼식 잘마치고 신행갔으면 되지 남편을 붙들고 중신을 잘섯니 못섯니 몰아세우는게 아닌가 그것도 친척들 다 보는 데서. 남편이 헐크처럼 휙 돌았다
나는 순둥이 남편이 그래 무섭게 화내는것은 처음보았다.
그리고 남편은 나를 끌고 집으로 가자면서 \"나한테는!! 부모가 없다..!날 !아들이라 부르지말고 엄마도 아들 없는셈쳐라..복달 엄마 나온나!\"중간에서 내가 어찌하겠는가...자식이 져야 않겠나 나는 남편을 붙들고 왜이러냐고 애원을 했지만 남편은 꺽일 기세가 안보이자 그제야 어머니는 남편을 꼭 끌어 안았다\"내가 잘몬했다 ..우리가 어덯게 살았노..힘들게 살았는데 니가 와이라노..\"하면서 동정심을 끌어내려 아들을 붙잡었지만 남편은 끝내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리고 십분후 어머니는 잔치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택시를 타고 오셨다
남편은 엄마를 보자 등을 돌려 신문을 착 피는데 등에서 서늘한 냉기가 오스스 나는듯 했다 설마 신문이야 보아겠나...폼만 잡아겠지..나중에 어머니에 정식 사과를 받고 풀어진 남편에게 그날 신문에 무슨 기사 났드나 물어보다가 귀때기 한방 맞을 뻔했지만 말이다.남편의 대 폭팔로 그날 부터 어머니는 많이 수그러 들었다 물론 세월탓도 있지만.. 며느리 넷을 보고난후 내게 많이 후해지셨다 몆년전에는 아버님은 나를불러 당신의 재산을 남편 이름으로 이전해 가라 하셨다 증여세 문제로 이전은 안했지만 이전해 가라는 그 말끝에 \"내가 며느리넷중에 너한테 모쓸거 마이 보여줬다 아이가..\"하시는 그 모습에서 어느정도 위안을 받았다 지금도 한번씩 속 뒤집어으면 \"시끄랍니더 마..잠자코 계시소 \" 한마디 날리고는 휑 와버린다 친정 엄마 말따라..부모가 자식 잡아 먹지 않으니 참아봐라 하셨는데 엄마말이 꼭 맞았다
세월이 흘러 30대가 훌쩍 넘어서 막내 동서가 예물하던날 이야기를 잠간하고 고백시리즈를 마쳐야겠다 막내동서 예물해주던날 어머니는 내 손목에 금 닷돈 팔찌를 채워 주셨다 막내는 다이아도 해주고 뭐도 해주고 했는 데 큰 며느리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긴 들었나보다.시절을 잘 타고난 막내 동서는 며느리 넷중 가장 편안하게 살아가고 나를 비롯하여 첫째 둘째 동서도 여러고비 잘넘기고 잘살아간다
유일하게 마음고생 안하고 산 막내에게 우리 동서셋은 자네는 금테 두르고 우리는 동태 들렀나..한번 보자..\"하며 놀려대면 막내 동서는 까르르 웃으며 싱거운 형님들한테 감히 감히?눈을 홀기고는 한다.
동서들 들어 올때마다 \"질부들은 큰동서 따라만 하면 된다 ..\"하던 아재들도 다 돌아가시고
아버님과 두어분만 노년을 보내시고 있다 .아직도 이거 해도고 저거 해도고 주문이 많지만 웬간하면 들어드리려 하고 있다 그리고 고백컨데 나는 지금 시어머니 한테 골이 잔뜩 여름내내 시댁을 안가고 있다 몆달전 땅을 샀을때 일이다 남편이 시댁에 말씀 드리고 싶어 하는것을 안 시끄러울라 걱정 하며 말렸었다
남편 왈\"당신은 장인 어른한테 자랑하고 나는 왜 못하게하노..\"듣고보니 맞는 말이 아닌가.
\"그람 맘대로 하소 했더니 남편은 밤 열한시에 큰 아들 땅 샀다고 자랑을 하고 어머니도 좋아라 하셨다 그리고 이튼날..어머니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나는 전화를 걸었다
\"어무이...땅 보고 싶으신교 ?아버님 옷 입혀서 땅보러 가시더..\"전화를 끊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몰고 시댁 가는 길에 나 면허 땃을적에 시 어머니가 기집년이 재수없게 면허 땃다고 대소가 동서들 앞에서 그랬다는 말을 들엇을때 어머니가 내가 모는 차를 절대안탓줄알았다 왜냐면 재수가 없으니..근데 안타시고 되나.내가 당신 아들모다 운전이 더 베테랑인데..그라고 땅을 보여드렸는데..또 날리가 났다 풀이 많이 나서 보기싫다느니 땅금이 비싸니 하시면서 옛 버릇 또 나오셨다 그 천성은 개도 안물어 가는지..
전 주인이 농사가 많아 한 이태 묵혔더니 잡초가 무성 하다고 잡초는 포크레인으로 밀어서 뒤집으면 되는데도 땅 잘몬 샀다고 내속을 뒤집어 놓았다 다들 좋다고 감탄하는데 우리집 노인네만 초를치고 저날리다.해서 지금 나는 삐져서 두달째 시댁에를 안가고 있다.아울러 어머니는 내게 주춤한채 한풀 꺽여 땅 자도 못 꺼내고 있는데 이게 내 팔자인가보다.
그러타고 징징 짜면 뭐하노..밀가루 반죽 하는것처럼 질면 밀가루를 더 넣고 되면 물을 더넣고 반복하다보면 적당한 반죽이 나오겠지 생각한다.그래도 요즘은 이만하면 살만 하니까..
나는 아직도 시집살이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남편말 따라 부모인데 어쩌냐..남편 말이 맞따 부모가 아닌 손 아래 라면 쎄리패서 고치놓거나 남이라면 안보면 그만 이지만 부모이기에...자식은 어쩔도리가 없다.뒤 늦게라도 다행이 나는 남편과 잘 지내고 손자 라면 꺼뻑하는 시 부모님한테 다행스러움을 느낄수밖에..
어느 수필가가 그랫다..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융통성을 발휘하고 결혼생활을 연장할 가치가 없다면 과감히 깨라고..나는 융통성을 발휘하고 싶다 그 만큼 내 가정은 가치가 있으니...왜 살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자식들이 슬픈눈을 가진 청년이 될까봐 살았다고 하고싶다 그래도 왜 살았냐고 또 묻는다면 같은대답을 할것이다..
<끝>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 부터 드리겠습니다\'
구질구질한 지난 이야기를 몆날 며칠 연장을 해서 죄송스럽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면서 후회도 많이 했고
글을 릴레이로 쓴다는것이 이렇게 부담 되는줄 몰랐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타이레놀 열개는 먹었고 진이 빠져 스포츠 맛사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ㅎㅎㅎ
제글을 보시고 건질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건져가시되
도움이 안되는 부분은 두고 가시기 바랍니다.
마무리가 영 이상하지만 .더이상 끌고나갈 능력이 없기에
이만 끝내렵니다..길고 지루한글 읽어주신분들 감사드리고.
저 당분간 반성하는 의미로 잠수좀 타겠습니다 상어나 농약풀지 말아주시길..ㅎㅎ
최근 새로 시작한 운동을 하고 아파트 계단을 올라서는데
\"부재중이라 옆집에 택배 맡겼습니다..\"란
택배 쪼가리가 현관문 앞에 붙어 있었다.
짐작이 가는바.. 쨘한 설레임으로 ..
단단히도 봉한 박스위에 테이프를 칼로 가르자
며칠전 이박삼일에 남도 여행을 했을때 그 아쉬운 여운이
박스안에서도 몽실몽실 피어올라 거실공기를 타고 톡톡 터트려지고 있는듯 했으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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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영암을 다녀왔습니다.
얼굴은 모르지만 이미 내면의 슬픔 ..기쁨..아픔..까지도 글로 함께한
세월이 있기에 여덟시간에 긴 여행이 즐겁기만 하였지요.
수년전 외가가 있는 전라도 보성을 처음으로 다녀왔을때를 추억하며
버스를 타고 다시 또 갈아타고 도착한 영암.
그곳에도 가을이 한창 이였습니다.
박실님의 죽마고우 산하님이 노란버스를 몰고와서 나를 태우고 식당 으로 안내를 했지요.
영암에서도 이십여분 걸리는 작은 마을은 가을 오후 햇살에 보드라움인지
평화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유달산에 웅장함..촌길 양옆에는 가을꽃이 하늘거리고..
붉은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가지는 가을에 풍성함을 더해주었습니다.
글속에 박실님과 산하님이 운영하는 식당앞에는 박실님이 오메불망 기다리다
나를보자 팔을 벌려 안아주며 \"여기가 어디라고 이먼데를...\"고마와 어쩔줄 몰라하는
박실님에 마음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동백나무와 은행나무가 우뚝 서있는 마당을 지나
이층 철계단을 올라가는 식당 외벽에는 붉은 담쟁이 넝쿨이
낮선 경상도 아지매에 방문에 작은 움직임으로 반겨주는듯 하였지요
창이 너른 이층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올라 오면서 보았던 은행 나무와 동백 나무가 가을 하늘에 여백듯 채운듯 했는데
어쩌면 화가가 구상 한듯한 한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너른 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그림 액자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노을이 물드는 이른저녁 ...
나를 비롯한 .박실님...산하님...아리님..그리고 막내 오월이가 마침내 뭉쳤습니다.
동서남북에 흩어져 살면서 한곳에 모이기가 쉽지 않은 귀한 시간.
귀한시간을 만든 다섯여자는 ..
박실님 식당에서 마주 앉아 맛깔스런 전라도 음식에 복분자술이 몇잔 오고 갔지요.
차려준 밥상을 받아 먹어 보는게 얼마만인가..젓갈은 왜이리 맛난거야.
술도 댕기고 음식도 땡기고 분위기도 댕겼지만 예약 손님이 있는터라
박실이님 집으로 먼저 가있기로 했습니다
외식 할때 하고 또 다른 융슝한 대접..을 받고 아리님과 오월이와 함께 우리셋은
다리를 지나 도로를 건너 골목을 올라가서 철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툇마루가 있는 일자형 한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밗리님의 글속에 간간히 등장 했던 감나무 아래는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감잎이 우수수 덜어져 있었으며 마당옆에는
샌드백이 걸려있었고 그냥 지나칠리 없는 저는
샌드백을 몇번쳐서 힘자랑을 하고 툇마루를 올라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이 기꺼히 내어준 집..
창이 많은 한옥..달빛에 비쳐지는 창밖에 앙상한 나무 그림자에.
허허로운 마음이 공기을 가장한채 훅..지나가는것도 보았습니다
온천같은 매끄러운 물..
좋은 공기..좋은 바람이 넘치는 그곳에서 가을속에 세 여자는 자연스레 한 침대에 누워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에 시선이 갔지요..
\"와 운치 있다.\"
\"감이 툭 떨어질것 같아.내일 가기싫다.\"
\"우리 모레 갑시다.\"
\"아리님..그럴래요?오월아 너도 되니?나도 내일 가기시려...됐나?됐다..하루 더있자\"
오예~~그래서 이박삼일이 된게지요.
지금도 박실님에 집이 눈에 선합니다.
뒤란으로 돌아가면 무화과<있었나?긴가민가>와 감나무..앞마당에는 더 커다란 감나무와
채 따지않아 건 포도가 되어 버린 포도 송이들 길다라게 늘어진 수세미.
해가 잘드는 툇마루..담넘어 보이는 가을산에 완만한 곡선의 유연함.
정신이 정화 된다는게 이런건가요.
정을 받는 기분이 이런건가요.저는 그곳에서 배려를 배웠고..배려를 받았으며
배려할줄 아는 남도의 두여인을 보았습니다
잡생각이 사라져서인지 까르르 까르르..웃음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말을 잘근잘근 씹듯이 말하는 아리님을 장난 삼아 빤히 들여다보면
\"머야~~아씨 ..말안해~~앙탈?에 눈물많고 웃음 많은 오월인 까르르 넘어가고.
기분이 유쾌하니 나의 멸치춤과 밸리 댄스도 저절로 나왔지요.
우리셋을 무엇이든 멕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한 박실님.
박실님을 받쳐주는 오래된 친구 산하님 ..진국인 산하님 남편..
게다 단란주점에서 마주친 산하님 남편의 매력?적인 친구분들..
이박삼일에 남도 여행이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운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떠나는날 모여인과 모여인은 눈물로 이별을 고하고.<얼레리꼴레리~~\">
두여인이 아쉬워 우는 모습에서 덩달아 눈물이 흘렀지요.
\"아씨이~~아리님 손 수건좀 줘요..홀짝...\"
\"도영님..이 손수건이 이거보다 더 좋은거여요.홀짝..\"
\"어마...그러네요 아까거보다 눈물이 흡수가 잘되네~~\"
울다가 하하 ~~호호~~웃을수 밖에 없는 좋은 인연들..
정을 담뿍준 박실님..감사해요.!
잔잔한 웃음을 주시던 산하님..고맙습니다.!
나의 장난에도 삐지지 않은 아리님 땡큐!..
착한 오월아..목포역 카페에서 녹차 잘 마셨데이..
너만 목포역에 떼놓고 둘만 기차를 타고 와서 많이 아쉬웠데이..
박실님의 마당이 한눈에 보이는 안방 침대의 따근함과 맑은 공기가
오래도록 그리울겝니다.
뒷마당 창문 너머 감나무에 앉아있던 이름모를 새소리도 그립습니다.
늦은밤 창문에 비쳐지던 포도 나무의 앙상함 때문인지.
알수있을것 같은 애잔한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를 않은채 마음은 영암에 가있습니다.
오래도록 글 친구로서 좋은 인연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만남을 기약하며..
추신(우연에 일치로 글이 한꺼번에 올라왔네요..아,환상의 트리오야..ㅎㅎㅎ)
포항에서 도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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