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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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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라도 내 이름앞에 놓인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BY yun421 2000-12-31

아이들과의 하루는 는 전쟁같은 일상이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결혼 전 못다푼 나의 꿈보따리를 풀겠노라고 매일을 다짐하고 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부들은 가족들 틈에 밀려 자꾸만 의지를 무뎌지게 만들고 만다.
무작정 덤벼들어 부딪칠 용기를 잃어가는 <신중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것도 그 중의 중요한 이유일것이다.
'안정' '체면' '적당히'가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가족들 뒷바라지로 내 이름쯤은 뭍혀져 살아가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살게된다.
그러나 때때로 몇년을 함께 살아온 옆집아줌마에게도 내이름은 낯선 사람으로 살아가며 '이름을 잃어버린' 아줌마가 되는걸 원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서만 살았는데, 때로는 가족들이 제각이 흩어져 자신들만의 일에 바쁘고 혼자 빈집에 남아 눈물을 글썽이는 아줌마로 살아가는것은 그다지 유쾌하거나 바라는 삶이 아니다.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조금만 용기를 내어보면/ 아줌마에게도 열린 세상의 희망을 보게 된다.
결국 '누구의 엄마'나 '누구의 아내'보다 자신있고 당당한 내 처음이름'ooo'의 세글자를 찾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녹슬지 않고 용기가 자꾸만 덜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그만 일이라도 나는 끊임없이 벌이고 있다.
그저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커주면 내 희망이 날개를 달고 꿈을 펼치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지금에서 내가 할수 있는 분량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자꾸만 변해가고 있고, 예전의 나 보다 더 당찬 욕심과 용기로 부딪치는 많은 젊은이들 앞에서 자꾸만 고개가 떨구어 지는것도 사실이다.
어디에서고 아줌마의 자리는 늘 그렇게 밀려나고 있었다.
나도 내가 두 아이를 앞세운 아줌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 그래서 못다풀고 시름시름 앓으며 "내 꿈들을 돌리도--" 하고 속으로만 고함을 치게 될때도 있다.
정작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그땐 용기가 없어서, 시작도 못하는건 아일까????
이렇게 욕심을 부린데도 결국 늘어나는 나이와 주름만 남게 되는건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가득일때도 솔찍히 있다.
그래서 언제나 기회는 지금이 최고라는 말을 의지하고 나는 일을 벌인다.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도 독학으로 밤을 세우며 제빵기술을 익히고 ,아이들이 다 잠든 새벽과 밤 시간을 이용하여 집에서 '웹모니터'라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정체될수 없어 신문과 뉴스는 꼼꼼히 챙겨 보거나 메모도 하고,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고상한 책들도 본다.
아이들이 기어 오르고 빌린 책이 찢겨져 돌려줄때는 다른 선물을 싸들고 돌려줘야 할때도 간혹 있지만, 지금에서 내 의지를 놓고 있지 않는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위안한다.
늘 기회는 내 주위에 있다.
내가 어느때고 성실하게 생활하다보면, 그 기회는 결코 나를 지나쳐 가지 못할 것이다.
얼마전에 나는 그 기회에 대한 보답을 감사할수 있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증거를 갖게 된것이다.
우연이 아니라 아이들을 앞세우고도 할수있는 만큼에 최선을 다한것이 드디어 기쁨도 안겨준 것이다.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는 주위 사람들도 모두 극성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무도 나를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열심히도 한다"고 말합니다.
웹모니터라는 일이 하기에 달렸다지만, 두 아이들 데리고도 할수 있는 최상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적절히 이용하여 최대한 열심히 노력했다.
비록 매달 과제물 제출을 위해서 몇일씩 밤을 세우기를 자청했지만, 조금은 피곤하게 극성을 떨었던 결과로 나는 총결산 시상식에서 1등도 하고 '지펠 냉장고'를 시댁에 선물할수 있는 며느리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나는 상을 받은 기쁨보다 내이름으로 어떤 인정을 받았다는 기쁨이 더 큰것이었다.
그 이외에는 그저 선물이었다.
내가 그토록 노력한 이유는 <이름가진 아줌마>가 되는걸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계기를 통하여 나는 나의 의지와 노력을 믿어주고 많은 기회들을 덤으로 갖을수 있는 계기도 후에 얻을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일을 갖을수 있는 기회를 얻는 힘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것이다.
내가 자포자기 하지 않고 그래도 두 아이들과 함께 끊임없이 갈등하며 '희망을 품은' 내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신랑도 아이들에게도 내 이름의 값어치를 보여줄것이다.

주부들이여!
많은 일들이 우리를 주부의 이름앞에 놓인 꿈과 희망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다.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뻔한 시간을 쪼개고 싸워서라도----------, 결코 내 이름앞에 놓인 나만의 분량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내앞에 놓인 희망을 풀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우울하게 시간을 죽여가는 희생양이 될 뿐이다.
가족이 있기에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있기에 내 가족들이 있다.
최대한 나를 존대하고 대접하고 믿어준다면 결국 내 가족들도 그만한 사랑을 받을 가치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조건 포기하고 희생하며 "않돼" "않돼"를 말하던 현실을 지금 다시한번 돌아보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큼은 되는데~"라고 한다면 바로 그것에서 당신의 꿈과 희망이 조금씩 싹을 틔우게 될것이다.
희망과 꿈과 미래가 없다면 우리는 그저 가족들 틈에 숨어 자꾸만 작아져 가는 아줌마로 끝나고 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