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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때를 정말 살았을까?


BY youni70 2003-06-13

어릴적 살던 마을은 유난히 초가집이 많았다.
그곳에서 오래토록 터전을 마련해서 사는 사람들은
그나마 제법 번듯한 집칸을 지니고 살았지만
타지에서 이런 저런 사연을 안고 흘러 들어와서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말그대로 초가삼칸 오막살이
생활을 하고 살았다.

우리집도 볼품없이 작고 옹색한 삼칸짜리 초가였다.
집집마다 두,세그루씩은 심어져있는 감나무도 없는
조금은 삭막한 구조였다.
아버지와 엄마는 빈손으로 만나서 그래도 일찍
내집을 장만했다고 좋아라했다.

이웃집들도 우리집과 사는게 비슷비슷한 형편이었다.
몇집 건너편에 자야네가 살고있었다.
자야는 나하고 나이가 같아서 맨날 어울려 소꿉놀이도하고
온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해가 저물도록 놀았다.
단촐하게 네식구만 사는 우리집에 비해
자야네는 식구가 많았다.

마귀할멈처럼 무섭게 생긴 할매와 아이들이 여섯이나 되었다.
자야 아버지는 술을 좋아해서 매일같이 술에 취해살았다.
자야엄마는 시골에서 살기에는 아까울정도로 인물이 고왔다.
그때만해도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어려서 새댁처럼 이뻤던
자야엄마는 우리엄마하고 함께 장에 다녔다.

무거운 사과를 함지에이고 힘겹게 팔러 나가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자야네 집안 살림은 할매가 하였는데 어찌나 성질이
사나운지 허구헌날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욕도 늘 입에 달고 다녔다. 우리가 노는꼴을 못봐주었다.

우리만 보이면 종주먹을 해쥐고 마구 욕을 해댔다.
자야네는 딸만 내리 다섯을 낳다가 끝에 겨우 아들을 보았다.
그래서 그 아들만 끔찍히여겼지 딸들은 웬수덩어리였다.
쓰잘떼기없는 저것들때문에 애비 등골 빠진다며
맨날 천날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야할매가 웃는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을정도로
할매는 어린시절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자야와 친하다는 이유로 싸잡아 미워했다.
자야아버지가 우리아버지를 무척 따라서 술을 안먹었을때는
우리집에 자주 놀러도왔다.

자야아버지도 인물이 훤해서 어디 나서면 빠지지않았다.
어떻게 그런 할매가 잘생긴 아들을 낳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자야 바로밑에 동생이 숙이였는데 지네 할머니를
쏙 빼 닮았다. 어찌나 드센지 남자들도 슬슬 피해다녔다.
누구던지 걸리면 머리채를 뽑히기나
큰주먹으로 맞기 일쑤였다.생김새도 할매와 흡사했다.
쭉 찢어진눈에, 툭 튀어나온 큰입,그리고 무시무시한 목소리
나보다 두살 아래였는데도 숙이한테는 꼼짝을 못했다.
여자 깡패가 따로 없었다.

술을 좋아하던 자야 아버지가 간경화로 죽자 이쁜 자야엄마는
돈벌러 도시로 나갔다.
그러더니 아이들을 하나씩 데려가고 나중에는 할매만
남게 되었다.
설이나 추석이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 오는데
어느날보니 자야엄마가 쌍꺼풀을 하고 나타났다.

동네사람들은 저 여자가 바람이 났나보다고 수군거렸다.
그렇게 사납던 숙이도 마치 딴사람처럼 변해서는
나하고 만나면 아주 조신하게 굴었다.
어느날보니 숙이도 쌍꺼풀이 생겼다.
할매는 명도 길어서 그렇게 오래도록 혼자 집을 지키며
텃밭 가꾸고 살다가 기운이 없자 며느리가 데려갔다.

자야아버지가 죽고나자 할매는 기가 푹 꺾여서 이후로는
소리도 안지르고 우리를 보면 미안한듯 웃어주었다.
하얗게 센 머리를 뒤로 꽁꽁 매어 비녀를 콕 지르고
늘 흰옷을 입고 주먹을 불끈쥐고 고무신이 훌렁 벗겨지도록
종종걸음을 치면서 걷던 할매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살아 가는지 궁금하고 그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