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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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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후 일양만강 하옵시고~


BY cosmos03 2001-09-11

" 순디가~ 핀지좀 쓰거라~ "
" 알았어 엄마~ 근데 어디다가? "
" 에미가 불러주는데로 넌 받아쓰면 돼. 엔필하고 작기장 갖고
에미한테 오거라 "

친정엄마는 거의 문맹수준.
한글을 아시긴 해도, 읽는수준정도
통신수단이 거의 편지였던 시절이니. 엄마는 내게 편지쓰기
심부름을 곧잘 시키셧다.
국민학교도 들어가기전...
엄마는 내게 글을 가르켜주신거다.
가에다 ㄱ하면 각~ 가에다 ㄴ 하면 간~ 나에다 ㄱ 하면 낙~
이런식으로 하나의 음율에 맞추어.
용케도 난 엄마의 그 리듬에 맞추어 알려주시는 한글에 눈을
뜰수가 있었다. (엄마는 은문(언문) 이라고 하셨음 )

신문도 읽어드렷고, 오는 편지마다 모두 읽어드렷으니.
빈민 이촌동에서는 날 모두 신동...천재라고도 하였다.
그 당시엔 웬 까막눈이 그리도 많았던지...

하긴, 국민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신문까지 좔좔 읽을
정도이니, 그런소리를 들을수도 있었겠지만
절대로 난, 신동두 천재도 아니었다.
막상 학교에 들어가선 완전 깡통 머리였으니...
엄마 말씀으로는 것 넘어서 건방지다고 하셧다.

각설하고~
작기장과 (노트) 엔필 (연필) 을 대령하고 엄마앞에
엎드려 있을라치면, 엄마는 얘기하시듯 내게 편지내용을
불러주시는거다.
" *** 전상서~
기체후 일양 만강하옵시며, 가내 두루 평안하옵시며~
붙들레는 어찌 지내며, 두루미네 돼지새끼는 잘 크며...
지금도 도데체 무슨뜻인지 모를 내용들을 엄마는 불러주셧고
난, 그저 엄마가 불러주시는 대로 적을밖에...
그렇게 몇번을 엄마의 편지글을 써 주다보니
서두부터 시작해 끝맺는 인사말까지 모두를 외워버렷다.

어느날...
그날도 엄마는 편지를 쓰신다고 노트와 연필을 찾으신다.
그리고 또다시...
기체후 일양만강 하옵시며... 하시길래
엄마의 말로쓰시는 편지내용을 모두 써 놓고
엄마 얼굴을 처다보니
" 이 지지배가 워째 핀지는 안쓰고 에미 얼굴만 빤~히
쳐다보느냐고 역정을 내신다.
" 히히~ 엄마! 내가 다 ?㎨? 읽어봐? "
" 원제? 그려! 한번 읽어봐라~ "
" *** 전상서~
기체후 일양 만강하옵시며, 가내두루 평안 하옵시고...
붙들레가 어쩌고... 두루미네가 저쩌고...
서울, 순디기네도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강건하옵시고, 안녕히 지세유~

외워둔 엄마의 편지글에 내 말을 조금 보태서 읽으니..
울 엄마 말씀~
" 야~ 에미가 핀지를 그렇게 잘?㎡? "
하신다.
" 잉~ 엄마가 그렇게 쓰라고 했잔아~ "
" 아구~ 그려...우리 순디기 똑똑도 하지 "
그리고는 그 편지를 갖고 온 동네를 다 다니시며
" 이게, 우리 순디기가 쓴 핀지구만유~ "
자랑을 하러 다니셧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 애정...
그땐,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지낸 철부지 시절이었는데
이젠, 알것같다.
내 아이가 조금만 눈에 띄어도 오만데 자랑하고픈 마음을...

엊저녁.
돼지 생고기를 쐬주와 함께 먹고 잣는데...
새벽녘에 잠이깨어 그뒤론 영~ 잠이오지 않는다.
얼핏, 엄마의꿈을 꾼듯도 싶고....

엄마!
저승, 그 동네도...
여기와 같은가요?
아버지와 조부모님들... 숙부님 내외분들...
기체후 일양만강 하옵시며, 가내, 두루 평안 하시지요?
지금, 이 새벽에 공연히 엄마가 그리워 지내요.
엄마! 엄마!....내 엄마~


다음에 엄마얘기 많이많이 할께요.
아부지 얘긴 쬐끔만 할꺼구요.
엄마 사우하고 손녀딸 모두 잘있어요.
아무 걱정 마시고 엄마~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