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산불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코알라 살처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66

내리사랑


BY hansook83 2003-06-10

길을 가다 아이들 티셔츠가 눈에 띄여 제주도에 살고있는 조카녀석
들이 생각나 한벌씩 샀다.

방금 우체국에 가 조그만 박스에 옷을 넣고 소포로 부치고 돌아왔다.
별거 아닌데 하루종일 우중중한 날씨 속에서도 마음이 훈훈해지고 행복해진다.

제주도에는 막내 시동생이 살고 있다.
서울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다가 잘 되질 않아 막내 동서 친정이 있는 제주도에 내려가 그야말로 친정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거다.

워낙 성실한 시동생은 열심히 카 센타에 다니고,
알뜰하고 생활력이 강한 막내 동서는 시간이 될 때마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한다.

동서는 이제 8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녀석과, 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6살 짜리작은 녀석, 이렇게 아들만 둘이다.

얼마나 개구장인지 빨래는 세탁기로는 절대 깨끗해 지질 않아
손으로 빤다고 한다.
청바지나 양말은 빨래 방망이로 두둘겨 빤다고 하길래
그냥 세탁기에 넣고 자주 빨아 입혀 했더니
이곳은 땅이 시멘트 바닥이 아니고 진짜 빨간 진흙이기 때문에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 형님이 어찌 이 고통을 아시겠냐고 한다.

나도 아들 하나는 키워 봤다 했더니만
형님 하나와 둘은 하늘과 땅차이라며 모르는 말씀 하지 말란다.

허긴 며칠전에 작은 녀석이 학교 운동장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
놀다가 떨어져서 팔이 뿌러져 기브스를 했단다.
어린녀석이 얼마나 답답할까하는 생각에
애 다치면 엄마 책임인거 알지 했더니
안그래도 학교에서 다쳐 그 화살이 학교 선생님들한테 갔단다.
에구.. 선생님인들 무슨 수가 있을라구...

근데 걱정이다.
큰 놈은 흰색 티셔츠에 파란 반 반지,
작은 놈은 연두색 티셔츠에 하얀 반반지를 샀는데.
허리가 한줌밖에 안 되는 막내 동서 빨래 방망이에 더 힘이 들어가게 한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친정 막내 남동생은 딸만 둘이다.
놀이방에 다니고 있는 다섯 살 짜리 지혜와, 두 살박이 나영이다.

지혜는 유난히도 까만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 조그만 눈이 잠시도 가만 안있고 잘도 움직인다.
어느새 꾀가 머리 꼭지 까지 찬 녀석은
오랜만에 내가 가기만 하면
벌써 엄마의 사정거리 안에서 벗어낫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소리 소리 지르며 노래를 부른다.

지혜야 큰고모 가고 난 다음에 그 모진 세월 어떻게 견딜라고 그러냐
아무리 말려도 기회를 잡은 녀석은 신이 나 있다.
형님만 왔다 가시면 애가 버릇이 없어 져요..
안다 알어.. 그래도 좀 뛰 놀게 놔 둬라.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녀석이 말을 한다.
큰고모 지혜는 영어 배우는데
엄마 토까가 뭐지... 래빗..
래빗이 뭐개요.. 토끼예요 토끼
엄마 집은 뭐지... 하우스..
하우스가 뭐개요... 집이예요.
벌써 고생길에 들어 선 듯 하다.

형님 큰일 이예요. 아직 한글을 못 깨우쳤으니..
초등학교 선생님인 올케가 하는 말이다.
뭘 걱정해. 한번 배우면 평생을 잊어먹지 않고 사용할 건데..
좀 늦으면 어때.
나처럼 느긋해 봤으면 좋겠단다.

한글도 깨우쳐야 되고,
영어도 해야 되고,
그 조그만 어깨에 벌써부터 엄마 아빠의 기대가 자리를 잡는다.

아래 위 6개난 이빨을 다 보여 주지 않을 만큼
베시시 웃어 주기만 하는 순한 작은 놈이
한결 속편해 보이기만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거 같다.
어린 조카들이 애뜻하니 이쁘고 눈에 선하다.
내 아이를 키울 때 느껴 보지 못했던 느낌이다.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난다.
어머님은 참 자식들에게 차가우셨다.
엄만데하는 서운함이 많았었다.

그런데 손주녀석한테는 하시는게 다르셨다.
더 잘해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시던 모습에
낯설어 하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내 나이 들어
그시절 어머님의 나이를 바쁘게 따라 잡고 있다.

어머님이 손주 녀석에게 베푸셨던
그 내리사랑이
내 나이 먹은 선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