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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코알라 살처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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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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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4)


BY 새봄 2003-06-10

경찰서에 구속된지 일주일만에 인천구치소로 옮겨졌다.
상습적인 음주 운전으로 구속된 남편이말이다.

집을 옮기면 가루비루나 휴지를 사가지고 집들이를 가듯이
죄를 짓고 들어간 곳도 세끼밥을 먹고 쌀거 싸고 어두워지면 잠을 자니 있는 동안은 내 집 아닌가?
그 집을 옮겼다고 하니 집들이를 가야 옳은거 아닌가?
아닌가? 긴가? 모르겠다.

살다살다 별일이 다 많다더니 우리가 그 짝이다.
암튼 이리봐도 웃기고 저리봐도 웃기다.
"잉~~ 구치소에 있다니까 기가막혀서..히히히히..."
"아! 글쎄...인생을 포기한 사람같어...폐인같다니까...으흐흐흐.."
"나도 모르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우헤헤헤.."
친척들이 친구들이 나보고 도닦았냐고 한다.
태연하게 말하고 실실실 웃으며 말하니까 나도 내가 생각해도 도닦은 미친여자같다.

구치소에 가던 날도 경찰서에 가던 날처럼 날씨가 화창했다.
올 핸 구성지게 비가 많이 내렸는데 남편에게 면회를 가던 날은 모두 다 햇님을 그렸고
일기를 썼다면 맑음이라고 표시했을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내고 면회 접수증을 쓰고 한 줄로 길게 붙여 논 방석같이 생긴 의자에 앉았다.
그러다 가만히 앞을 보니 음식 사입 코너가 보이고 돈 사입창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에서 슬그머니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나마나 들으나마나 구치소에서 주는 음식이 제대로 생겼을까?
뭐... 이러한 잡스런 생각이 머릿속에 돌더니 돈이나 넣어줄까로 바뀌였다.
그래서 지갑을 열어보니 십만원정도가 눈에 보였다.
뭐... 오만원 꺼내 남편이름 쓰고 내 이름 써서는...뭣이 쓰는 게 이리 많은지...사입창군지 뭔지에 넣었다.
구치소에 돈 넣어 주는걸 사입이라 썼는데, 맞는지 틀린지..아닌가? 긴가? 모르겠다.

내 남편만 죄 짓고 사는게 아닌가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병원과 구치소는 안 올수록 좋다.
다들 말이 없고 다들 초췌해 보이고 다들 한심해 보이고 다들 불쌍해 보인다.
병원도 무채색이고 구치소도 무채색이다.
병원도 삶과 죽음의 귀로에 서서 갈팡질팡이고
구치소란 곳도 병원과 비스무리한 심정일 것이다.

내 차례였다.
전구가 띠엄띠엄 나간 오래된 터널같이 생긴 복도에 회색문이 줄줄이 붙어 있었고,
문마다 번호가 줄줄이 붙어 있었다.
내가 지정받은 번호를 찾아 들어가니 누렁색 죄수복을 입은 남편이 보였다.
가슴왼쪽엔 명찰인지 번혼지를 달고서....
면회시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분이였다.
무슨말을 했던가? 후다닥 시간이 가고 남편도 어디론가 나가고 나도 들어갔던 문을 열고 나왔다.
뭐...그랬다. 후다다닥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것뿐이였다.
흑백 영화를 잠깐 본것같았다.
빠삐용이란 영화를 본것같기도 하고
몬테크로스트 백작이란 영화를 본것같기도 하고...
우짰든 몽롱했고, 오래된 영화같고, 읽다가만 소설같고, 꾸다가만 꿈같고... 그랬다.

아....남편이 한 말중에 이말이 기억났다.
"오만원만 넣어 줘"
그래 난 오늘 손해 본게 없다.
남편이 원하는 금액 오만원만 넣었으니까.
남편도 나도 손해 본 것도 없고 이윤을 남기지도 않았다.
우린 서로 싸우지도 않고 실랑이도 하지 않고 수지타산이 딱 들어 맞았다.
결혼해서 이렇게 딱 들어 맞는게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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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구치소에 갔다 온 뒤부터 하염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창가에 앉아 몸놓고 마음놓고 빗소리를 많이 들었던 올 여름이였습니다.
단 한번 눈물을 흘렸고,
두어번 남편은 지금 뭐 할까?했고,
서너번 남편을 미워했고
대여섯번 앞날이 암담했고
예닐곱번 우울증에 시달렸고
열번정도 한숨을 쉬었습니다.
비와 함께 지독하고 덤덤한 여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