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빛에 비친 아름다움
길을 걷다 버스정류장 지날 쯤
어미등에 업혀 얼굴 빼꼼이 내민
한 아이의 눈길과 마주쳐 그 초롱함에 이끌려
먼 기억을 더듬는다
칠십 년대 열차통학 하던 시절
어느 가을 토요일 오후인가 싶다
그날은 늘상 타고 다니는 진해선이 아닌
목포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경전선을 이용했다
지금은 없어진 구마산 역에서 다음 역인 창원 역까지
완행열차는 비좁기 그지없었다
밀양 김해지역에서 마산으로 장보러온 사람
서부경남지역과 전남지방에서 부산 행차하는 사람
그리고 학생들
간신히 비집고 입구에서 몇 발자욱 파고든다
몇 권의 책들은 옆구리에 끼고
좌석 등받이 모서리를 붙들고 중심 잡아 선다
좌중을 한번 휑하니 둘러보곤
내 눈길은 턱밑에 네 사람들에게 닿는다
창가 쪽엔 육순쯤 되어 보이는 노인은 검게 탄 얼굴에 까칠한 수염
검정색 중절모를 눌러쓰고 계셨다
두 손을 만지작 그리면서
건너편에는 여고생 나이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지
노인과 그 소녀는 간간히 무어라 얘기들을 하였어
말뜻으로 보아 부녀간이였지
내 눈길은 소녀에게 머문다
분명 여고생은 아니였어
그 시절엔 여고생은 단발머리였거든
목덜미가 훤히 보이도록 단발이어야 했으니까
소녀의 머리는 하얀목을 다 감싸고있었지
그리 예쁘지도
또 그리 못나지도 않았어
그런데도 어딘가 모르게 품위가 있어 보였지
화려한 입성이 아닌데도 그리 보였어
하얀 바탕에 작은 꽃무늬가 박힌 브라우스
교복 같은 감색 주름치마를 입고있었던 것 같아
난 소녀의 눈을 보았어
오래지 않아 그 눈속으로 빨려들고 말았지
그 눈빛은 맑아 초롱 하였으며 깜박일 때마다 영롱 그렸어
그런 눈빛은 첨 보았지
내 혼을 잃을 만큼
그런 모습이 아름다움이라고 느꼈어
그 소녀는 참 아름다웠어
그 눈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되었지
역에서 내려 혼자 길 걸으며
뇌리에 새겨 넣은 소녀의 빛을
여태 기억한다
.
.
.
.
.
내 사랑의 눈빛도 그 소녀와도 같이 닮아있다
庚辰年 섣달 스무아흐렛날
눈빛 아름다운 아이를 보아 먼 기억 되살려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