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계신 시어머니께 이편지를 띄우고 싶습니다.
어머니 저 정애예요.
어머니 이렇게 말하면 정애가 뭐꼬, 하시겠죠!
하지만 저는 어머니에게 그런 딸같은 존재이고 싶답니다.
처음 어머니를 대할때 얼마나 어려웠던지 다친다리가 아픈줄도 모르고 내내 무릅을 구부리고 앉아있었죠.
그리고 어머니의 한마디 한마디가 왜그리도 서운하게만 들리던지 정말 힘이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하시던 어머니께서 어느날 봉막염으로 쓰러지시고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는 모습을 보았을때 정말 하늘이 노랗더라구요.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기를 한달, 지치고 힘들었지만 전그때 부터 어머니가 무섭지 않게 되었어요.
저를 의지하시는 어머님이 너무나 애처럽게 보였거든요.
수술후유증으로 치매증상까지 오셨을때 전 정말 많이 울었었죠.
했던 말씀 또하시고, 무엇이 보인다며 허공을 휘휘저으시고, 또먹고 또먹고 그러고도 채워지지않는지 무언가를 내내 하려고 하시던 어머니...
어머니 그때 어머니는 여보! 하며 가끔 아버님을 찾으셨는데 훗날 어머니께서는 여보라는 말을 해본적이 없다고 하셔서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어머니께서는 다행히 6개월만에 정상으로 돌아오시고 그때의 (6개월간) 기억들은 하나도 하지못하지만 전 그?p개월동안 어머님의 살아오신 날들을 어렴풋이 알게되었지요.
힘들었던 시집살이며, 시부모님 때문에 남편과의 애뜻한 사랑도 모르고,아버님 형제들 키우고 장가보내고, 그리곤 자식들까지 출가시키고 나니 이내 혼자가 된것같은 상실감에 힘들어 하셨었다는 것을....
어머님은 그때 제가 간호해드린것도 모르시지만 전 그일로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요즘 천식때문에 또 힘들어 하신다는데 자주 찾아가 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정애가 어머님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알아주세요.
이번에 내려가면 된장주실꺼죠?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께
서울에서 둘째며느리 정애가...
오늘 제가 시어머님께 띄운 글이 라듸오에 소개 되었어요.
우리 신랑하고 같이 들었는데 눈물 나더라구요, 우리신랑도
좀 그런것 같았어요.
이세상의 여자는 나와 어머니밖에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