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대지가 품어내는 노염을 풀고 새벽까지 시골의 매캐한 내음이 그리운 것은 동화같은 이야기다.
지난해 여름 모기떼에게 밀려 고향을 버린 울산소식을 접한 적이있다. 실감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방영된 뉴스에 모기는 하루살이처럼 무더기로 날며 펄벅의 작품, 대지의 메뚜기 떼를 방불했다. 모기 떼가 사람을 뜯어 견딜 수 없어 정든 고향을 포기하고 114 세대가 집단 이주를 했으니 모기와의 전쟁은 참패한 셈이다.
전자매트, 분무기식 킬러, 모기가 싫어한다는 묘한소리를 내는 기구등 미사일급 재앙이 모기나라를 위협하건만 모기들의 집단공격엔 만물의 영장도 재간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도 아파트 1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모기는 철저한 소독에도 아랑곳 없이 침실까지 특공대를 침투 상주한다. 새벽 2시 앵~ 하는 소리만 나면 온 가족 초비상이다.
단 한 마리만 있어도 박멸해야 잠을 자는 예민한 남편은 거의 필사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침대에서 자건만 오직 모기는 남편만 공격을 한다. 아침에 얼굴을 한방 물릴라치면 화를 벌컥낸다. 영락없이 물린자리가 부풀어 주접스러우니 짜증이 날 밖에...
단 한방도 물리지 않는 나와, 한결같이 물리고야 마는 두 사람 사이엔 어떤 다른 점이 있는 것일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물리고 난 아침, 모기에 대한 분풀이는 즉각 내게 떨어진다. 냉혈동물이라느니...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느니...모기란 놈이 왕갈비 맛을 아직도 모른다느니...오죽해야 모기도 상대를 안하느냐느니...
아니! 당신은 예뻐서 아까워 못 물었구나...그래도 내가 물리는게 낫지 살도 많으니...당신이라도 안물렸으니 다행이란 등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이 많은데 악담만 골라서 한다.
거울에 물린 흔적을 보며 치를 떠는 남편이 우습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여 '오늘은 내 끝장을 내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모기장을 사고야 말았다. 요즘은 팔지두 않는 줄 알았는데 이불 집에서 팔았다. 여기저기 못을 박고 모기장을 침대위에 치니 마치 임금님의 침실같다. 안에 쏘옥 들어가서 모기장 밖을 내다보니 아늑하고 안심이 된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이 번엔 모기장 밖에서 팔뚝을 공격! 허를 찔린 것이다. 얼굴은 멀쩡한데 여전히 한 사람만 죽을 맛이다. 이래도 저래도 같이 먹고 살잔다. 하도 화를 내기에
"당신 물어 뜯은 모기가 당신보러 뭐라 하는지 아우?" "모라카나?"
"너무 그러지 마세요~ 내몸에 당신 피가 흐르고 있어요~그런대요"
이 때다. 벽 구석에 한마리가 빨간 꽁지를 내려뜨리고 있다. 이를 부드득 갈던 남편이 벽에 문제가 생길까바 조심스레 잡는다고 하다가 그만 노쳐버리면 이건 사태는 극악에 달한다.
아침도 못 먹고 출근을 하게 된다. 그 모기를 잡아서 쓰레기 통에 넣고야 세면실에 들어가니 빠듯한 아침시간에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나는 국냄비를 올렸다 내렸다...
하지만 그래도 이 모기란 놈은 신사적인 구석이 있다. 비겁하게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하는 법은 없다. 뒤통수를 때리거나 비열한 협박이나 모함이나 흑색선전을 하는 못난 짓은 안한다. 정면에서 미리 싸이렌을 불어대고, 공격나팔을 불고야 공격 한다.
올여름도 우리집엔 일찌감치 모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금년엔 어떤 작전을 세워야 할런지...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지. 나도 남편과 같이 물려서 볼에 붙은 모기 잡으려고 서로 따귀를 때리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런지... 한 여름 밤의 깊은 꿈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