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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되어 가버린 수박


BY 나비 2003-06-03

슈퍼는 우리집에서 한 십여분 걸어가야 있다.
이웃 아파트 상가에 있는 슈퍼인데, 작년 여름에 수박을 사다가 먹어봤지만 실패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늦은 저녁시간 야심한 밤에 전화가 온다.
틀림없이 아르바이트 하고 오는 딸아이의 데리어 오라는 호출 전화일것이다.

차가 없다고하니, 택시비가 없으니 돈을 들고 나와서 기다리라고 한다.

택시비를 준뒤 나온길에 슬슬 걸어가서 수박이나 한통 사오자고 의견을 모은다.

비가오려나 후덥지근한 바람이 살을 끈적끈적 하게 덥힌다.
슈퍼에 들어가니 수박이 크기대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교 신입생 명찰 달듯이 앞자리에 두거운 매직 펜으로
"수박 달지 않으면 리콜 합니다" 라고 써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그런 문구를 본적이 있었지만, 한번도 리콜하지 않고 달고 맛있는 수박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일요일 ,
일부러 수 많은 과일 가게를 지나쳐서 그집까지 수박을 사러 갔더니
수박 농사 짓는 아저씨가 교회를 다니셔서, 주일에는 작업을 안해서
물건이 없다고 다음에 사러 오라는 슈퍼 아저씨의 정중한 말씀에 다른 곳에서라도 물건을 받아다 놓지 그랬냐고 되물으니 , 다른집 수박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 얘기가 일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주 믿음직 스럽게 다가와서, 다른 곳에서는 살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고르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주인 아저씨가 집어주는대로 한통 덜렁 들고 나온다.

사러 갈때는 몰랐는데 무거운 수박 한통을 들고 걸어오려니 한걸음이 천리같다.

집으로 가까이 갈수록 숨소리는 씩씩 거칠어 진다.
문을 열자마자 큰칼 들이밀어 중간을 쩌억 가르려니.. 갈라지는 소리가 어째 시원치가 않다.
붙어싸우는 싸움꾼 뜯어말리듯이 양쪽을 손으로 잡아뜯듯이 갈라놓으니 수박색은 연분홍 치마마냥 벌겋게 물들다 말았고. 한점 베어 무니 "형님맛도 아우 맛" 도 없는것이 이름과 무늬만 수박이다.

차로 싣고만 왓어도 이리 분하지는 안을것이고, 우리집이 스위치만 누르면 쓩~하고 오층까지 데려다 주는 "에레레~~" 만 있어도 , 내 이리 원통하지는 않았을 것이구만...

머리속에 번개 처럼 떠오르는 생각 있으니" 리콜"이다.
수박 맛이 "어지간하지도 않고, 웬만 하지도 않아서 ", 슈퍼 주인에게 전화를 하고는 싶은데, 리콜이란 제도가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 잠시 망설여 본다.

용기를 가지고 D RRRR~
친절한 아저씨 반색을 하시며 가지고 오라고 한다.
조금 염치 없지만 배달은 안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자꾸 가지고만 오란다.
아마 새로 사서 먹는거라면 바람처럼 왔을텐데..
친절이란 북방선 마냥 한계가 있는건가?


다시 그걸 들고 거기를 가야 한다고?
안먹고 말어야하나...그러기엔 수박값이 녹록치 않다.
이번엔 들고 온것 보다 더욱 난감하다.
혼자서 반쪽씩 되어버린 수박 두쪽을 들고 가려니 손이 거미마냥 서너개 있으면 좋겠다.

잘라진 수박 반덩어리를 ?N으로 쫘~악 붙여서 들고 나가니,
안 먹고말지 그걸 들고 나가냐고 ,입가진 사람들은 다 한마디씩 한다.

속으로 콧방귀를 낀다.
바꿔와서 달고 맛있으면 지들이 더 먹을거면서...

야심한 밤에 수박 반통 들고 운동삼아 길을 나선다.
남들은 돈내고 헬스장에서 아령들고 운동하는데, 오리지날 자연 바람과 튼튼한 두 다리로 ??훌構?걷는것도 얼마나 좋은가..

맘 먹기 달렸다고 노래까지 흥얼흥얼 부르며 걸어가니 지척이 코 앞이다
문 열고 들어가니 슈퍼아저씨, 맨발로 뛰어나오며 반갑게 맞아주니 우선 한시름 놓은뒤에, 무거워서 반통만 가지고 왔다는말에 어금니 까지 보이는 함박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씨~원한 냉장수박" 한통을 서슴없이 꺼내더니
얼른 가슴에 안겨준다.

"아저씨~
반통만 가지고 왔으니 작은걸로 하나 골라주세요" 하니
어림반푼도 없는소리 하지도 말라는듯이 손을 '싹싹' 내두르며
얼른 가라고 등까지 밀어낸다.

밀린듯.. 밀린척하며 ,냉가가 서늘한 수박을 가슴에 안고오는길은.
왜 이리 멀고 먼걸까?

느닷없이 주시느라 수박 끈도 없이 주셔서 ,들고 가는 손도 시리고 가슴도 시리고, 끈이라도 있어야 이쪽 손, 저쪽 손 바꾸기라도 하지...


천신만고 끝에 집에 다다르니
집에 누워서 텔레비만 보면서 수박 바꾸러 간다고 , 속 좁은 여편네 취급하던 남편과 딸 자식은,얼굴 벌겋게 되서 들어온 나는 안 보이고 속살 빨갛고 야들야들해서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만 한입 베어물고 입이 찢어져라 웃고있다.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 ,못하는게 없다고 츄켜세우는데..
그소리는 모월모일 모처에서 듣던 대사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

슈퍼아저씨..
배달은 안해주셨지만 무지 맘좋은 얼굴로, 더 비싼 냉장 수박으로 바꿔줘서 아줌마 맘을 감동시켰으니..올 여름 수박은 "죽어도 고!" 라고 산농슈퍼 에서 먹어야 하게 생겼다

그나저나 나에게 버림받은 반통짜리 수박은 그 아저씨 열불난 속 달래려고 설탕 퍼 붇구서 화채해서 드실려나?
그렇게 해도 별 맛 없을거라고 ,설탕값만 아까울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