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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쏘의 뿔처럼 앞으로 나아가라...


BY [리 본] 2003-05-31

옛말에 이런말이 있다. 흉보면서 배우고 미워하면서 정든다고.. 기억속에 잿빛으로만 남아있는 춘천이란 곳은 참으로 한이 많이 서린 곳이다. 한창 꽃다운 20대와 30대 시절을 생활고와 눈물 바람으로 보냈으니 여북하면 그쪽보고 오줌도 누고 싶지 않았고 하늘도 쳐다보기 끔찍한 곳이였다. 그러나 추억이란 짐짓 지나고 나면 그리운 법... 비늘조각처럼 점점히 박혀있던 고통의 순간들도 시간이 지남에 본래의 빛이 퇴색해져 가고 고통의 순간도 회상해보면 감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아랫도리 힘이 빠지고 오금이 붙을듯한 아찔한 진퇴양난의 순간이 있었다. 1981년 가을이였다. 춘천에 십여년 산동안 주민등록에 등재된 집주소만도 10곳이 넘을 것이다. 일년에 한번씩은 이사를 다녔다는데 살림살이가 거하게 있는것도 아니고 지근거리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아 리어카를 빌려서 밀고 끌고 다녔다. 1981년 여름에 공지천유원지를 돌아 모퉁이 첫째 동네인 삼천리 돌고개에 안씨성을 가진 주인집으로 이사를 했다. 지붕이 생철지붕이였는데 우리가 이사갈때가 한여름이었는데 어린 계집아이들이 호스로 물을 뿜어 뜨겁게 달궈진 지붕을 식히는 집들이 많았다. 기존동네가 아니라 아마도 철거민촌처럼 한집 두집 들어서 동네가 형성되었고 동네 입구에 오직 구멍가게가 한개 있었고 가옥수도 20여채나 될까말까한 허술한 산동네였다. 여름엔 뜨겁게 달궈진 양철지붕 열기로 머리가 벗겨질 정도였다. 선풍기도 없이 헐떡대다가 첫돌무렵의 아일 데리고 산그늘로 올라가 돗자리를 깔고 아이 허리를 끈으로 묶고 나머지 한귀퉁이는 나무에다 묶어 놓고 뜨게질을 했다. 당시 스웨터 한 장 삸이 오백원이였는데 젖먹이 아일 데리고 육장 떠봐야 하루에 한장 뜨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감동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다. 바덴바덴에서 올림픽이 서울에 유치됐다는 소식을 들었을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가을이 왔다. 가을이면 춘천공설운동장에서 춘천시민체육대회와 소양제가 열렸다. 말하자면 난 서울사람이나 진배없었다. 서울문화권에서 태여낳고 서울서 학교를 다녔으니까... 그런데 그때만해도 중소도시인 춘천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과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란 어려운 여건이었다. 볼거리에 목마른 나는 공설운동장가서 운집한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공지천을 지나고나니 잠시 갈등이 생겼다. 철길로 가면 바로 질러가는가게 되고 평상시의 길로 가자면 근화동 버스터미날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제법 큰 아이를 업고 있는 나는 슬그머니 잔머릴 굴렸다. "그래 이 철길로 가면 10여분 정도면 가는데 힘들게 돌아갈 필요 있겠어?" 그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철길로 접어들었다. 철길 중간에 공지천으로 흐르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빨리가고픈 욕심에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철다리가 나왔다. 처음엔 멋보르고 발걸음을 떼어 한발 두발 걸어서 삼분의일 정도를 갔는데 갑자기 무서움이 전두엽을 자극했다. 아들을 들쳐 업은 띠도 기실 힘을 받쳐주진 못하는 멜빵형태의 끈이었다. 명색이 사내아이인데 등뒤에서 버둥거리고 용트림이라도 하는 날엔 중심을 잃어 다리 아래 강물로 떨어지기 십상이였다. 만약에 기차라도 온다면 치어죽거나 부득불 강물로 떨어지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랫도리에 힘이 스르르 빠지고 더이상 한 발자욱도 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오줌을 질질 쌀 형국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아들의 생명을 지킬 임무가 있는 새내기엄마인 나는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잠시 숨을 고르고 다리에 힘을 주고 아이를 업은 깍지 낀 두손에 힘을 쥐고 철길에 가로 놓여있는 나무 보드들을 조심스레 딛었다. 다리를 다 건너 와선 눈물과 땀이 범벅이되서 허깨비마냥 스르르 주저 앉아 버렸다. 구경이 뭐길래...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거길 간다고 아일 업고 철다리를 건넜단 말인가? 반넋이 나가서 체육대회 구경을 조금 하다가 멍청하게 돌아왔다. 그날의 사건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내 어리석음의 소치였으니까...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그런 아찔한 경험도 내가 힘들고 지칠때는 반추하고 사려를 깊게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할때... 그럴때는 주저말고 무쏘의 뿔처럼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