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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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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되어준 남편


BY hansook83 2003-05-30

몇일 한여름 같이 무덥더니만
비가내립니다.
앞서가는 자연의 질서를 바로잡아주는 것 또한
자연인듯 싶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올해로 마흔 여덟
무심히 내려오는 몇가닥의 앞머리칼을 얼른,
그러나 조심스럽게 머리 중앙을 가리는 중년이죠
그는 아침이면
"나 돈벌어 올께"하고 나갑니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구청공무원입니다.
삼개월에 한번씩 다시 신청을 해야하지만
분명 그는 구청에 속해 있습니다.

남편은 길거리에 무단으로 달려있는 플랭카드를
수거하는 일을 합니다.
비오는 오늘
비맞으며 거리에 서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짠해옵니다.

남편을 바라볼때마다 감사가 넘칩니다.

남편은 교통사고를 두번이나 당했습니다.
첫번째 사고로 뇌를 많이 다쳐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주머니 마다 집 전화번호를 넣어줘야 했고
시간 관념이 없어 혼자 내보내질 못하고
항상 손잡고 다녀야 했습니다.
말하는 법, 글쓰는 법, 계산하는 법...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됐지요.

몇년이 지난후 겨우 혼자 활동할 수 있게 되었을때,
남편은 또 한번의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번에도 얼굴 정면과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눈이 실명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고
얼마나 넋이 빠져 있었던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눈위 커다란 상처와 다리를 조금저는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가는 인생길이 순리대로
어제를 기반삼아 오늘을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려운 일들은 동무삼아 온다더니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집을 경매당하고 엎친데 겹친 격으로 있던 돈 모두 투자했던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반을 당해
말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되었던 시절이었죠.
참으로 어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항상 온순하고 유순한 성품인 남편이
한꺼번에 변한 환경을 받아들이기란 무척 힘들었나봅니다.

사람이 저렇게 망가질 수가 있구나
하루하루가 백년같이 길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의 끝은 언제나 올련지...

하지만 어두운 터널은
들어갈때는 순간으로 캄캄한 암흑속으로 몰아넣지만
터널의 끝자락에 오면
벌써부터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 환한 세상으로 인도하듯이
그렇게 저또한 희미한 희망을 붙잡고
터널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살림살이는
20년전 살림을 시작할 때보다도 못한 생활이지만
하루를 벌어 하루를 생활할 수 있는 기쁨이 있고
거의 모든 활동을 혼자서 할 수 있는 남편이 있어 한없이 감사하고
정신차릴 수 없는 삶속에서
잊고 지냈던 아들녀석은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행복이
비록 다리는 조금 불편하지만
살아있어 함께해준 남편과
앞으로 무엇이 될꼬 기대되는 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지나친 무더위를 식혀주는
빗소리를 들으며
남편의 귀가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