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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2 --- 난 이렇게 봤다


BY 가이우스 2003-05-27

매트릭스 1편은 20세기에 만들어진 21세기형 영화였다.
이젠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이른바 ‘뷸릿액션’도 그러하지만 매트릭스 1편이 던진 철학적 충격 또한 영화사에 한 획을 긋기에 충분했다.

1편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른바 장자의 “호접몽”---내가 꿈에 나비꿈을 꾼 것인지 꿈 속의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의 21세기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고 있는 일상과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충격적 도발, 그리고, 기독교적 구원이 영화의 근간을 이룬다.

2편 리로디드(Reloaded)를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핵심 개념으로 “반복성”을 선택했다. 반복이라는 말은 순환, 혹은 무한루프 등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편에서 나타나는 이 반복성은 단순반복이 아니다. 2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이율배반적 반복성’이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크레타의 철학자 에피메니데스의 궤변과도 같다.

“모든 크레타 인은 거짓말쟁이다!”

오라클의 존재적 모순은 크레타인의 궤변에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이율배반적 고리는 호프스태터의 역작 “괴델, 에셔, 바흐”에서 끝없이 나오는 순환구조와 아주 흡사하다.

반복성, 혹은 순환고리는 2편의 부제 “리로디드(Reloaded)"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비록 네오의 꿈 속이긴 하지만 트리니티가 오토바이 타고 보조발전설비를 파괴하러 들어가는 장면이 영화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수미쌍관적으로 맞물리며 등장하는 것도 이런 순환성의 일부를 이룬다.

어찌 보면 매트릭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런 (모순된) 순환성이라는 것을 강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직 요원 스미스의 끝없는 자기 복제, 시온의 의원님이 말했던 기계와 인간의 공생논리, 가느다란 복도에 끝없이 늘어선 문들, 시온의 여섯 번째 파괴(하느님이 7일째 쉬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게 아마 마지막일 것이다), 네오가 매트릭스의 설계자(architect)와 대면하는 방에 등장하는 무수한 모니터들, 그 속의 수많은 네오들, ...

직선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논리를 바탕에 깔면서 불교적인 순환구조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긴 하지만, 이 순환구조의 미래와 관련된 단서는 1편의 모티브로 제시했던 장자의 꿈 속의 ‘나비’와 묘하게도 연결된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면 뉴욕 앞바다에서 큰 해일이 일어난다는 얘기인데, 요즘 통계학에서 주목받고 있는 혼돈이론(chaotic theory; 카오스 이론)과 관계가 있다. 혼돈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 또한 반복성과 규칙성이라는 점이 또한 흥미롭다.
그런데, 혼돈이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규칙성과 대칭성의 끝없는 반복을 통한 새로운 질서와 규칙의 구현이라는 점이다 (비선형동역학). 그것이 바로 ‘나비효과’이다. 처음에는 그 효과가 너무 미미하여 무시할만한 매우 작은 요소들이 이 무한반복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전혀 얘기치 못했던 결과를 양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anomaly'라고 표현했고, 자막에는 ’불규칙성‘으로 처리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비정상성이라고 변역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매트릭스는 이러한 아노말리까지도 자신의 체계에 포섭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즉, 네오라는 거대화된 아노말리 --- 매트릭스 자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를 통해 매트릭스는 아마도 새로운 순환과정에 돌입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2편의 갈등구조는 따라서 매트릭스의 순환성과 반복성의 확인, 이에 맞서는 네오의 ‘선택’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순환구조를 벗어나는 방법은 제시된 규칙을 어기면 된다. 네오가 트리티니를 선택한 것은 매트릭스가 여러 번 제시해 온 순환구조를 거부한 것인데, 이것이 네오의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인지 트리니티에 대한 사랑에 경도된 우연의 일치인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겠다. 그러나, 아키텍트가 말했듯이, ‘사랑’이라는 아노말리를 이전의 ‘그’들에게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네오의 선택은 트리니티와의 사랑이라는 우연을 통해 아노말리의 극대화와 새로운 질서 구축이라는 필연성이 관철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신질서 구축은 매트릭스의 완전한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미 매트릭스가 그런 거대화된 아노말리를 자신의 새로운 순환구조로 포섭하기 시작했기(아니면 훨씬 이전부터 포섭했든지) 때문이다; 아키텍트는 네오의 선택을 ‘이미’ 알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대체할 방법도 뭔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시온의 인류의 탈출구는 과연 무엇일까.
매트릭스라는 순환체계 속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나 ‘선택’ 마저도 ‘미리’ 알려져 있다. 메로빈지언이 말했듯이, 철저한 인과율(causality)이 지배하는 구조다. 언뜻 이것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위배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양자역학만큼 결정론적인 이론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잠시 옆길로 새어 본다면, 네오가 아키텍트를 만났을 때 사방의 모니터에 나오는 네오의 모습, 아키텍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대한 네오의 반응, 그 각각의 모습을 비추는 모니터, 이윽고 네오가 한 가지 반응을 ‘선택’했을 때, 그 수많은 모니터들 중에서 네오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단 하나의 화면 속으로 우리가 흡입되는 장면은 흡사 양자역학의 ‘실험(관측)에 대한 가정’ 혹은 요즘 우주론에서 각광받고 있는 ‘멀티버스(multiverse)' (최근 개봉한 큐빅2에서 이 개념이 화면으로 보여진다)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아쉽게도 2편에서는 제대로 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네오가 트리니티를 ‘현실’에서도 살려내고, ‘현실’의 기계들을 물리치는 장면에서 네오의 ‘현실’, 시온의 ‘현실’이 또 하나의 ‘가상현실’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즉, 이미 매트릭스는 새로운 단계의 아노말리를 훌륭하게 포섭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3편의 부제가 레볼루션인 것이 그래서 흥미를 더한다. 이런 양파구조적 순환고리를 완전히 폐절시키려면 그야말로 ‘혁명적인’ 반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게 뭘까?

맺기 전에, 2편에서 트리니티의 오토바이 고속도로 역주행 씬은 자동차 추격 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해도 칭찬이 모자랄 역작이라고 본다...

ps.
메로빈지언이 이전의 "그"였다는 주장은 애니매트릭스를 보지 못한 나에겐 다소 의외다. 서둘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랑하는 AI로서의 네오, 그를 통한 인간과 기계의 조화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한 어느 분의 글도 탁월한 분석 중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삼가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