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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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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목말


BY 마음자리 2003-05-26

"익아. 목말 태워 주까?"
"정말로요?"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제안에 내 눈은 동그랗게 빛났다.

"자. 타라~"
더 어릴 적에도 목말을 탔었겠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약간은 쑥스럽게, 약간은 조심스럽게, 약간은 으쓱대며, 아버지 도움 받아 훌쩍 들어올려져 아버지 목 위에 올라앉으니, 높던 세상은 저 아래로 낮아져 버렸고, 갑작스런 높이 변화만큼 현기증이 어질어질 생겨났다.
실눈을 뜨고, 턱이 아버지 머리에 닿을 정도로 몸을 낮추고, 아버지가 내미시는 손을 꽉 잡았다. 좌우로 흔들리는 아버지의 어깨 따라 내 엉덩이도 함께 흔들렸다.

"기분 좋나?"
"예. 아부지. 히히~"
"인자 내려 온나. 아부지 어깨 아푸다."
아버지의 어깨를 내려올 때쯤엔, 눈은 새로 보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고, 손은 아버지의 손을 놓고 새로운 곳을 가리키기에 바빴다. 아버지 옆에서 따라오던 세 살 많은 작은형은 내가 많이 부러웠으리라.

그 날이 분명 학교에는 들어가기 전인데 몇 살쯤이었는지 기억은 분명치 않다.
공직에서 물러나 사업을 구상하고 계시던 그 당시 실업자였던 아버지.
집에 계시기 무료하였을까?
아니면 사업차 집을 떠나시기 전에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였을까?
골목에서 놀던 나와 작은형을 부르시더니 영화를 보러가자 하셨고, 그 영화 보러 가던 길에 내 기억에 오래 남은 그 목말을 태워주셨던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본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
아버지가 태워주신 기억 속의 처음이자 마지막 목말.

그날 본 영화도 몇 장면이 기억이 난다.
흑백이었고, 해병대의 무공을 다룬 6.25 전쟁영화였었다.
기억나는 배우는 고 서영춘, 최무룡씨였는데, 서영춘씨가 여자 분장을 해서 위기를 넘기던 장면에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고, 최무룡씨가 마지막 장열히 싸우다가 전사하던 장면도 기억이 난다.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을 내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딸아이는 몸집이 또래들 보다 작고 목말타기를 좋아해서 많이 태워주었는데, 뒤에 태어난 아들녀석은 몸집이 큰데다가 겁이 많아 내 목에 태울라치면 온갖 발버둥으로 거부를 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에 몸무게가 40키로 정도라 그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도 전해줄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아버지의 목말.
단 한번이었지만 내가 앉아본 가장 편안하고 든든한 자리.
한없이 따뜻한 어머니의 품속 자리와 비견되는 아버지만의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