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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창가에 꽃을 꽂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지요


BY 손풍금 2003-05-24

아마 지난 여름이였었나...
라디오를 켜는데 막 시작된 진행자의 말이였는데

'동쪽 창가에 꽃을 놓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지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 하루종일 설레여 장미 한송이를 사들고 집으로 온적이 있었습니다.
동쪽창가에 꽃을 꽂아놓으려구요..그럼 정말 소원이 이루어질것 같았거든요.
후로 꽃을 선물받게 되면 동쪽을 향해 놓여진 오디오라든지 DVD위에 올려놓고는 간절한 느낌에 갇혀있을때면 꽃무더기를 바라보고 있는게 습관이 되었지요.

오늘은 24일 영동장입니다.
언제나 처럼 찾아와주는 단골 아줌마가 있는데 제가 그아줌마 이야기를 들려드린적 있지요.
밭일갔다가 어린자식들 두고온 집에 불이나서 뛰어들어가 자식 구하느라 온몸에 화상입은 우리 노근리 아줌마 이야기말이예요.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점심때쯤 되었나..우연히 고개를 돌렸는데 버스정류장쪽에서 빨간챙모자를 쓰고 걸어오고 있는 노근리 아줌마가 한눈에 확띄였는데 오늘 참 예쁘시더라구요.
그런데 아줌마 걸음걸이가 어째 자꾸만 비틀비틀 거립니다.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저는 장난끼가 동하여 '아줌마, 술드셨네베.. 그치요? 아줌마, 남자친구 생기셨나? 얼굴도 발개지시고 엄청 예뻐지셨네' 했는데
아줌마는 '아이고, 곯리기는... 아직 남자친구 없어.'하시는데 그런 농담받는것이 즐거운듯 웃으신다.

'그런데 왜 걸음걸이가 흔들려요?'하니

'기운이 없어서 그래. 밥맛도 없고, 지금도 병원가서 링겔맞고 오는거여.
그런데 나 예뻐졌어?'하신다.

'네.. 많이요. 전 아줌마 남자친구 생기셨는줄 알았네.'

'후후. 아픈게 다 난거 같은네. 예뻐졌다니께 참 좋으네'

'그런데 아줌마 오래 사셔야 하는데 걸을기운도 없게 다니시니 어쩌면 좋아요.'

'오래는 .. 그냥 살다 죽으면 되지,
나 죽으면 새댁이 나 보고 싶어할려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기운내세요.
아직 살날이 살아온날만큼 남았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하는데

'그럴려나.. 내 살으면 뭐하지. 아무도 찾아오는이 없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화장을 곱게 하세요, 아줌마 아직도 누군가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지요?.'

'기다리면 뭐해, 아무도 오지 않을걸...'했다.

그말이 몹시도 쓸쓸해 아줌마가 금방이라도 어딘가로 자취를 감출듯 비감스러웠다.
노근리 아줌마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다음번에 오시면 꼭 연락처를 알아놔야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서지방부터 비구름이 몰려와 중부지방은 오후늦게 비가 내릴것 같다는 일기예보는 하늘을 덮고 있었다.
노근리 아줌마가 버스타고 가는 길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옥천장에서 알게된 아기분유 홍보를 위해 일용판매사원으로 근무하는 영숙씨가 급히 뛰어와
'언니, 비와요. 짐싸는데 도와줄께요. 서둘러요.'했고
상냥한 영숙씨의 도움으로 화장품을 쉽게 차에 정리해 올리고 천천히 빗속을 달렸다.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께요. 영숙씨. 한번 들어봐요.

남편과 자식에게 버림받은 아줌마가 있었는데
온몸에 화상을 입어 힘든일도 하지 못하고 아무 생활대책이 없는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나라에서 어려운사람에게 실행하는 보호를 받아보세요.
했더니 남편과 이혼서류정리가 안되고 장성한 자식이 있어서 혜택을 받을수 없다는거예요.
영동군에서 나오는 생활보조비 십팔만원이 아줌마의 수입 전부라는데 약이 없으면 하루하루 살아갈수 없는분이고..
지금 아줌마가 사는곳은 할머니 한분이 혼자사시는 집에서 허드렛일을 해주며 방한칸 얻어 공짜로 기거하는데 겨울에는 불길도 닿지 않는다는데 그 또한 눈치가 보여 만만찮은모양이예요.
오일마다 한번씩 보는데 매번 볼때마다 아줌마 몸이 한없이 약해지는게 눈으로 다 보이니 어떡해야 할지 아무런 도움을 드릴수 없는것이 안타깝네요.'

영숙씨는 '왜 이혼을 안하신다는데요? 그렇게 몸 흉하다고 떠난사람이 밉지도 않은가..'

'왜 이혼을 안하냐 하면..
자식결혼에 지장있을까봐 그런데요.
그리고 언젠가 남편이 돌아올지도 몰라서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기다린데요.'

'자식은 뭐한다는데요?'

'미국에서 간호사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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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말을 안해주고 왔네요.
아줌마, 그 방에 창문 있어요?
참,창문은 없어도 되요..동쪽을 향해 마당에 피어있는꽃 있어요?
그꽃을 향해 이루어지고 싶은 생각을 떠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데요.
정말이예요. 아줌마... '
그말을 꼭 해 줬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