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친구에게서 청첩장이 왔다.
친한 친구들 중에 처음 치르는 혼사이다.
딸이 있는 친구가 제일 먼저 스타트할거라고
믿었는데 아들만 셋 있는 친구가
먼저 결혼식을 치르다니....
놀라운 사실은 결혼 당사자가 우리 아들과
동갑내기인 친구의 세 아들 중에 막내아들이기 때문이다.
만으로 24살,1979년 생이다.
친구는 제일 만만한 막내를 툭하면 등 짝을 후려치며
'이 놈, 저 놈' 했었는데 벌써 장가를 간다니 자꾸 웃음이 나온다.
신부는 같은 대학동기란다.
현재 간호원으로 취직한 상태이고 요즘의 결혼적령기에 비하면
빠른 편이지만 나이도 신랑보다 한살 많으니 그런대로
결혼해도 무난한 것 같았지만, 신랑은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지 못한 상태라
서둘러 결혼시키는 이유가 궁금치 않을 수 가 없었다.
이유인즉.....
친구의 남편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다.
친구와 무려 12살 차이가 난다.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고로,친구의 남편은 우리들의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친구가 우리들보다 한 살 많으니
남편의 나이는 올해63살이고 내년 2월에 명퇴를 하신 단다.
시댁 쪽 부모님도 다 살아 계시고
긴 직장생활동안 이렇다 할 경조사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으니
여태껏 부조금을 낸 것만도 얼마나 많은데 본전생각이
나서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아들 세 놈 중에 유일하게 애인이 있는 막내 아들놈부터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길래 한편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또, 한편으로는 '맞아. 딴은 그렇기도 하네, 여태 남에게 부조한 게 얼만데..'
몇 년 전에 공무원사회에 모든 경조사에 부조금을 하지 못하게
지침이 내려졌다가 심한 반발 때문에 무산 된 적이 있었다.
따지고 들려면 일리가 있는 반발이다.정부에서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는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월급에서 직원들 경조비를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아예 공제하기도 했다가, 일괄 공제에 직원들의 동요가 있자
자유의사에 맡겨졌지만 직급 따라 3만원,5만원으로
정해져버려서 그나마 고민하지 않고 경조비를 내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엊그제(월요일)부터 공직에 있는
사람은 경조사 때 5만원 이상을 받지 못하게 못을 박으며,
어길 시에는 사법처리 한다는 말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은 양반들이사 얼마나 많은 금액의 부조금이 들어와서
그런 조치를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개의 많은 공무원들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일가친척이나 가까운 지인들 외에는
뻔한 금액이다.
우스개 소리로 친구에게 '이틀만 늦게 결혼식 했어도 큰일 날 뻔했네.'
했지만, 내가 그 날 축의금봉투를 조금 늦게 내는 바람에 공책에
적혀있는 금액을 슬쩍 보니 거의 3만원,5만원이었다.
물론 돈으로 따져서 민망하지만 봉급생활자에게는 직장생활하는
동안 아이들을 출가시켜야 본전을 그나마 건진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듯이 막상 직장을 떠나게 되면
친한 사람 외에는 일부러 찾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이는 명퇴 6개월을 남겨두고 두 달 간격으로 세 번의
혼사를 치르는 웃지 못할 씁쓸한 광경도 있었다.
그래도, 선배 두 분은 아들, 딸을 하나도 결혼을
시키지 못 하고 명퇴를 했는데 평생에 한번 있는 아이들의
大事를 억지로 치를 수 는 없다고 하시는 건실한 모습도 보여줬다.
급히 치르는 친구네의 혼사와 대조적이지만 친구를 흉 볼 수도 없는
우리나라의 경조사 풍습인걸 어쩌나.
예전에 엄마가 오빠에게 이웃이나 친척들 경조사에
참고하라 시며 보여주시던 꼼꼼히 적어놓으신 일명'잡책'이 생각난다.
이웃의 경조사에 갈 때 잡책을 들여 다 보며
그 금액대로 봉투에 넣을 거라며 디밀던 공책에 엄마 특유의
삐툴빼툴 이웃집을 칭하는 암호가 웃음을 자아내게 했었다.
'상주떼기 ' '깡통집' '남선장집' '과부떼기' '저너머집''곰보네'....
희미한 기억의 갈피 속에 묻혀진 옹기종기 모여 살던 그 동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도 3년 안에 둘 다 보낼 준비하라 길래
"아직 7년이나 남았는데 무슨 3년..."
"직장생활 오래하면 얼마나 지겨운데, 3년 만 하고 고만 둘 거야.
잔말말고 두 놈 다 얼른 애인들 데리고 오라해라"
아들녀석은 여자친구가 있지만 딸애는 결혼 안 한다고 했는데..
(나도 결혼 안 하고 엄마하고 살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결국은..)
삼대 거짓말중의 하나,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도 끼여있지 아마..
20일전에 아주버님이 돌아가셨지만 남편은 친척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에게는 친 형이라 직계인데
왜 알리지 않느냐고 했더니 본인도 직원들이 형, 아우. 장인 장모의
경조를 통보 받으면 별로 내키지 않았다며 자기는 내 부모, 자식 외에는
부고장이나 청첩장을 돌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요즘은 남편의 핸폰에 멀리 있는 동기생들의 장인, 장모의 부고도
알려주고 아예 은행구좌번호까지 찍혀 돈을 입금시키란다.
편리한 세상이다.
친구네의 결혼식을 계기로 몇 가지를 예를 본 보편적인
우리의 경조 풍습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