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학교 양쪽으로 심어진 벚나무엔 이미 져버린 벚꽃대신 푸른잎이 하늘을 가리기 시작하는 신록의 계절 오월이었습니다....
운동장 가운데 둥그렇게 피어오른 잘 정리된 잔디밭엔 여학생들의 웃음이 그대로 베여 있던 그계절....
그날은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위한 학교 체육대회가 있던 날이라 다른날과 달리 여학생들의 함성이 학교를 삼킬듯이 우렁차던 날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 죄스럽지만 또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어 스승의 날만 되면 한번도 잊지 않고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는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여고 2학년인 그 해 스승의날 화창한 날씨덕에 체육대회를 즐겁게 마친 우리 이학년 이반 반 간부들은 스승의 날이고 하니 선생님께 저녁 대접을 하기로 의기 투합을 하고 선생님께서 마치시는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선생님과 중국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당시 혼자 타지에 오셔서 하숙을 하고 계셨던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의 기특한 생각에 기분이 꽤 좋아 보이셨습니다....
이십년전이라 외식이라하면 중국집 짜장면이 최고였고 조금 잘 먹는다 하면 짬뽕이 최고였던 시절이라 스승의 날이고 하니 짭뽕으로 대접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정말 맛있는 저녁을 먹고 온갖수다를 떨어가며 총각선생님의 혼을 빼놓고 밤이 깊어서야 선생님을 먼저 보내드리고 우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오는길이었습니다....
한친구가 갑자기 장난끼가 발동을 한 것이었습니다...
야.....우리 샘 한번 놀래켜보까...
어째..어째하면 되는데...
너거는 가마이..있어봐라.. 내 한번 해보께...
우린 숨을 죽이고 빨간 공중전화기 옆에 얼굴을 대고 있었고...
드디어 그 친구가 전화 다이얼을 하나하나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능청스런 친구의 말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줌마...우리 샘좀 바꿔주이소...급한일이라예....빨리예...
여보세요....샘요 ..지 누굽니다...
아직 집에 안가고 무슨일이고....
샘요 저...크일 났심더....저..저...지금예...반장이 머슴애들한테 끌려 갔심더...
뭐라꼬??.거기어디고? 꼼짝말고 있어라...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맞은편 군청 담에 꼭엎드려 상황을 염탐하고 있던 우린 정말이지 기절초풍하여 고함을 지를뻔 하였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친구앞에 나타난 선생님의 모습은 신도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으며 육중한 몸엔 땀을 비맞은듯 흘리고 숨을 헐떡이고 계셨습니다....
그모습에 간이 철렁 내려앉은 우린 덜컥겁이나 아주 숨을 죽인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디고..어디로 갔노.????
샘요...저기저기요..
빨리 앞장서라..와그라고 있노?
예.예..저깁니다..저기요...
지금이야 훤한 가로등에 숨길수도 없지만 그때만 해도 가뭄에 콩나듯 하나씩 서있는 가로등은 겨우 어둠만을 면할뿐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누가누군지 분간을 못하는때라 자꾸만 이골목저골먹을 다니며...
샘요..쩌기요..
도대체 어데란 말이고....빨리 뛰어라...
온 시내 골목이라고 생긴데는 다 다니며 여기요 쩌기요를 하고 있는데 우리선생님 안되겠다 싶으신지 공중전화 다이얼을 급히 돌리셨습니다...
홍선생,..빨리좀 와보소 우리반에 반장이 머슴애들한 끌려갔다는데 몇시간을 다녀도 찾질 못하겠소...
같이 하숙하시는 선생님까지 나오시고보니 이친구...갑자기 장난이 너무 커져 겁이나 딱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고 지켜보던 우린 더 겁에 질려 그상황을 만든 친구에게 모든걸 맡기고 슬그머니 자취방으로 도망와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오돌오돌 떨고 있었습니다...
이골목 저골목 땀을 비오듯 쏟으며 선생님을 안내하고 다니던 친구.갑자기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선생님께 손이 발이 되게 빌었습니다..
샘요..지가요..장난했심더...용서하이소..죄송합니더....
순간 다리에 힘이 쫙 풀려버린 선생님 기진맥진하여 나무랄 힘도 없어지고....가쁜숨만 몰아쉬었습니다..
그시간 집에 들어와 선생님 처분만을 떨며 기다리고 있던 우린....
아이고마..이 우짜노....우짜다 이렇게 일이 커져버렸노....크일났네..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되어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방문노크하는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린 겁이나 이불속에서 얼굴을 내밀지도 못한채 벌벌떨고 있었더랬습니다...
야!..요놈들아 한 봐라.....
우짠다고 그런 장난을 해서 선생님을 초죽음을 만드냐???
갑자기 들린 선생님 목소리에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맨발로 온 시내를 뛰어다니신 선생님 발엔 물집이 잡혀있었고..온몸엔 땀이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녀석들 자고 내일 얘기하자...
밖은 희뿌옇게 밝아오는데 아이고마..뒷날 학교 갈일이 딱 꿈만 같았습니다...
학교가면 학교내에 소문이 쫙 났을텐데..이젠죽었다..
조회시간...우린 죄인이 되어 얼굴을 못드는데...우리선생님 연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스승의날에 못된짓 한놈들이 우리반에 있다....
그날 전 하루종일 선생님들께 꿀밤세례 받느라 머리에 혹이 생겼었습니다...
반장이란놈이 고것도 스승의 날에 선생님을 놀려 요놈아....꽁꽁
학교에도 선생님께서 교실마다 그 얘기를 하셔서 우린 졸지에 스승의 날의 악동이란 별명이 붙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정말이지 어디 계신지는 모르지만 가끔씩 이 일과 함께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스승의 날이면 더욱더..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제가 철없을때 벌인 장난인데 라디오 프로에 잠시 올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