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끝나고 들판이 횅하니 빌때쯤이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1번 겨울의 몽상을 듣는다.
황량한 11월의 들판을 한대의 마차가 지나고
저녁 짓는연기가 어둠에 맞춰
온 마을을 휘감는 듯한 상념에 젖게한다.
난 특별히 11월의 저녁을 좋아한다.
추수를 한끝이라 한없이 넉넉하고 푸근해 지는
그런 가을의 끝자락을...
그 맘때쯤이면
우리 동네 감나무밑은 어느새 왁자지껄소란스러워진다.
바람도 비켜간다는 앞산밑의 감나무들은
가을의 마지막 추수의 기쁨을 가져다 주곤했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날래고 일잘하기로
이름난 춘식이 아저씨가
허리춤에 비료 포대로 만든 자루를 차고
낫을 들고 나무에 오른다.
조심 조심 이가지 저가지끝에 매달린 감들을 따
한포대 가득 담아 내려 주고
다시 따고...
감이 가득 담긴 포대가 내려 올때마다 우리들은 신나
소리소리 지르며 뛰어 다녔고
어른들은 올해는 감이 더 실하다느니
어쩌느니하며 즐거워했다.
감나무의 감이 다 없어져 가고
저녁 어스름이 내릴즈음 어른들은
이건 저 앞개울 순영이네 이건 식구 많은 영교네...
하면서 감을 가르고
우린 언제 우리집 차례가 오나
목을 길게 늘려 기다리다
마침내 이름이 불리면
누가 먼저 나갈세라 앞으로 내달아
들지도 못하는 감바구니를
낑낑대며 맡았다.
감바구니를 둘러멘 아버지랑 돌아오는 길은
너무 좋아 괜시리 이리뛰고 저리뛰다 야단맞기 일쑤였다.
식구들과 깨진것 따로 크고 실한것따로 골라
쌀 뒤주속에 넣어 두고
말랑 말랑한 연시가 되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얼마나 물렀을까하고
엄마 몰래 꺼내 한 입 베어 물은 감은
목이 꺽꺽 메이고 입안 가득 모래를 넣은듯
숨도 못쉬게 떫었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면 또
얼마나 물렀나 손가락으로 눌러도 보다
다시 입에 넣으면 역시 떫고 맛이 없었다.
서리가 내리고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꼭지가떨어질듯 대롱이면
아버지는 "여보! 감 좀 꺼내 오지!"하셨다.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 둘러 앉아
먹는 그달콤한 맛이라니....
올 가을 나는 아이들과 먹으려
달콤한 홍시를 산다.
알이 잘아 두입이면 끝나지만 ...
입안 가득 담겨있는 달콤함이
내 어린시절의 가을날을
뛰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