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늙어 아프면 아파죽는것 보다 굶어 죽겠더라."
연휴에 잠깐 찾아뵌 시어머님이 얼굴을 보자마자 어리광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밖에서 누가 할머니라면 불쾌감을 느끼던 분이신데, 세월은 비껴가질 않는가 보다.
언제부턴가 위엄스런 표정은 가시고, 여섯살난 울 아들 마냥 내 얼굴만 보이면 투정이다.
누구는 여기저기 여행다니며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는다더라.
누구는 아들이 돈을 잘 벌어서 세계 일주를 서너번 했다더라.
하물며 길가에서 딸이랑 함께 손수레를 끄는 사람도 딸이 있어서 부럽단다.
딸도 없는 당신은 세상에 제일 불쌍한 분이고,
늘 표정없이 집에만 계시는 아버님은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남편이요,
당신 아들들은 지들 먹고 살기에도 바쁜 가엾은 것들이다.
대갓집 셋째딸로 여러 시중 다 거느리던 분이 시골 종갓집에 시집와서 한 고생은 책으로 엮으면 대하소설이요, 영화를 찍으면 시리즈가 될 거란다.
하던말 또하고 하던말 또하고,...
신세한탄에 아버님 원망에 자식들 걱정까지,..
노인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탄식이 쏟아진다.
예전엔 표정변화 없이 듣고 있는 내게 너무도 차갑게 군다고 속상해 하셨지만, 이젠 어머님도 당신의 말을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신다.
당뇨 수치가 높아서 식이요법을 해야하지만,
당신은 죽으면 죽었지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한단다.
돌아오는 길에 새로나온 두유를 큰 박스로 사다 놓았다.
"어머님. 출출하시면 빵이나 단것 드시지 마시고, 두유드세요."
늙고 병든 몸으로 당신 끼니를 만들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이 한 부모 못모신다더니...
당신들끼리 노후에 사신다고 멀리 일산까지 가셔서 지낸지 겨우 한달인데,...
"야야~ 늙어 아프면 아파 죽는것 보다 굶어 죽겠더라."
비는 오는데, 머리속에선 내내 어머님의 말씀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