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비라고 해야하는지 이른 여름비라고 해야하는지
하루왼종일을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해거름에 남편은 외출준비를 한다.
어디를 가느냐고...언제쯤 들어올거냐고 단 한마디도 묻지를 못하고
멀건히 남편의 뒷모습만을 바라본다.
아이들과 함께 조금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컴퓨터앞에
아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잠을자러 들어갔고
현관문따는 소리와 함께 부스럭소리가나 남편의 손을 바라보니
치킨이 들러져있다.
딸과 하숙생아이.
서둘러 녀석들을 깨워서는 치킨을 먹이며 난 남편에게 묻는다.
" 저녁은요? "
' 먹었어 "
".... 어디...큰집에서요? "
" 묻지마 어디서 먹었던 "
머쓱해진 나는 우적우적 아이들과 함께 치킨다리를 뜯는다.
하루종일 제 아빠 책상위에 있던 낯선 핸드폰의 출처가 궁금했던 딸아이가
닭기름을 입언저리에 묻히운채 제 아빠를 바라보며 묻는다.
" 아빠! 책상위에 있던 핸드폰 누구거야? "
" 알거없어 "
짧은 제 아빠의 대답에 아이는 망연해한다.
나와 딸아이...그리고 하숙생 정아.
우린 서로 눈으로만 주위를 훑으며 의무적으로 치킨을 뜯고 습관적으로 콜라들을 마신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 묻지마, 알거없어, 알려고하지마, 쓸데없는소리마,'
매말끝마다에 판에박힌듯 그리 대답을 한다.
조금씩 딸과난 닥아가고 싶어 남편과 아빠에게 말을 붙히면
항상 무안과 질책과 더는 닥아오지말라는듯...그렇게 바리케이트를 친다.
우린...
아무것도 알아서는 안 되었다.
남편의 행선지도 언제쯤의 귀가도
그저 바람처럼 휭하니 나갔다가 바람처럼 그렇게 또 휭하니 들어와도
알아서는 안되고 물어서는 안 되었다.
휴차날에도 남편은 어김없이 외출을 하고
또한 저녁식사까지 해결을 하고 들어와도
" 어디갔었어요? "
" 뭘 알려고해? "
" 밥은 누구랑 먹었대요? "
" 뭐가 그리도 궁금한대? 누구랑 먹었던? "
" 아까 전화하니 통화중이던데... "
" 뭐가 알고싶어? 알거없잔아 "
대화는 항상 그언저리쯤에서 단절이되고
난 그때마다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 석달이야. 석달의 유예기간이 있으니 그때까지만 있어보자 "
법원에서 판사앞에서까지 이혼이라는 판결을 받고
뒤돌아 나오던날... 남편은 내게 말을 했었다.
구청에 신고서를 넣으면 그땐 정말로 남남이 되니 서둘지말고
조금만 시간을 더 갖어보자고 했었다.
"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카드야. "
단호히 남편은 말을한다.
돌아온 그날저녁부터 우린 마치 아무일 없었단듯
그렇게 일상을 보내고는 있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더욱더 곪아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가끔은 의구심이 든다.
석달의 유예기간동안...
살얼음판 걷듯 그렇게 조심스레 디디고는 있다하지만
가끔은 분노하고 가끔은 또 폭발을 한다.
이제 카드의 남은 유효기간은 칠십여일...
그것이 제대로 유용하게 쓰여질지 아니면 무용지물이 되버릴지는
남편과 내 손에 달려있다고는 해도
칼자루는 깊숙히 남편의 손에 들려져 있는것을...
술에취한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 한때는 널 보내기위해 네 등을 밀었지만...
취조도 하지말고 알려고도 하지말고 아무것도 묻지도말고
옆에서 잠을 자던가 아니면 네 볼일을 보던가... "
스르르~
곯아떨어져 버린다.
슬그머니 방문을 닫고 딸아이의 잠자는 방에 들어와 오두마니 앉아있다보니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굳이 의미를 붙일수도 없는
지금 우리는...
무엇이라 이름을 붙여야할까?
남편과 아내. 아빠와 딸.
아무것도 알아서는 안되는 이름만의 부부와 이름만의 부녀간이 존재할뿐.
가족도...가정도 아닌 그저 삼개월간의 동거인으로 그렇게 살고있는것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