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와 정원사
장미가 있었다. 한 번도
세상 구경을 해보지 못한 이제 갓 핀 장미가.
처음으로 세상을 구경하던
날 그는 한 남자를 만났다.
수줍은 봉오리를 꼬옥 다문
그녀를 보며 난생 처음 탄생을 지켜본 장미라고 기뻐하던
그 남자의 벅찬 웃음을 그녀는 내내 기억하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그 정원을 떠나본 적도 없는 그녀에게 세상은 온통 그 사람뿐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어느 날 이웃집
정원사가 찾아와 그 남자에게 자신의 장미를 며칠만 돌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곧 내다 팔 건데 자신은 집을
비워야 한다고. 자신의 장미를 키우고도 시간이 남는다고
생각한 정원사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웃의 장미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여러 정원사를 만나던 터라 사랑을
받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니 사람을 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장미는 옆집 정원사를 보자마자 함박 웃음으로
몸을 흔들어댔다. 그 정원사는 그 황홀한 충격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엔 자신의
장미를 돌보고 남는 시간에 옆집에 들러 물만 주고 올 생각이었는데
점점 그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햇빛을 조절해주며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던 정원사의 미소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건성건성이었다.
장미는 물을
마셔도 햇빛을 보아도 전처럼 기운이 나질 않았다. 뽀송뽀송
피어나던 두 볼이 어느 새 깊게 패이기 시작했지만 정원사의
눈에는 보일 리가 없었다.
오히려 먹을 거 다 먹고 왜
이리 앙상한 거야 하며 짜증을 부렸다. 정원사는 혼자만
봐주기를 바라는 장미가 오히려 미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저 자신의 여유 시간을 조금만
나누어 준 것뿐인데도 과하게 기뻐하는 옆집 장미가 기특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옆집 정원사가 돌아왔다.
정원사
는 다시 자기 꽃밭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머리 속엔 장미의 웃음이 지워지질 않았다. 장미는
자신의 여윈 두 볼을 감추고 다시 온 정원사에게 한껏 웃음을
보냈다.
한 번 웃음을 지을
때마다 온몸의 진기가 한 움큼씩 빠져 나가는 게 느껴졌지만
그녀를 바라보고 웃던 그 모습을 보고 싶은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조금씩 떼어내었다.
하지만 그리움에
빠져 있는 정원사에겐 아무 것도 보일 리가 없었다. 온통
그 장미 생각뿐.
물을 주는 것도 온도를 맞추는
것도 자주 잊은 채 그리움의 시를 쓰고, 그리움의 노래를
부를 뿐. 그것을 지켜보는 장미는 점점 그 그리움 때문에
다쳐갔다.
어느 날, 거름이
떨어진 것을 발견한 정원사는 시장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옆집 장미를 보았다.
반가움에 소리를 치려는 순간,
그는 보고 말았다. 옆집 장미가 새 주인을 위해 만들어내고
있는 그 교태 어린 몸짓을. 자신에게 주었던 미소의 열
배쯤 되는 환한 웃음을
그가 다가가도 장미는
그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정원사는 자신의 장미가
떠올랐다. 그 동안 너무 무심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숨이
차게 뛰었다.
하지만 장미는 이미
이 세상에
남
아
있
지
않았다.
자신은 여러
장미를 키우고도 남을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던 정원사에겐
하나의 장미조차 제대로 키울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적은 것입니다.
님들에게
보이기엔 너무 부끄러운 글이지만 다 써 놓고 두 시간을
울었던 생각이 나
이렇게
올려봅니다.
결론을
바꿔 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소중한 것을 잃어 버리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어리석은
정원사가 많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살점을 떼내 가면서도 기다림을 운명으로 아는 장미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울음이 날 것 같은 장미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구월의
첫날이자 풍성한 가을의 시작인 오늘
여러분들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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