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기운 없이 누워지내다 오후 4시쯤 등산화를 조여매고 집을 나섰다. 이제 <어린이 날>을 챙겨주지 않아도 될만큼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은 내일 부터 치르는 중간고사 준비에 연휴를 저당잡혔다.
산 언저리엔 아이들 데리고 나온 가족 나들이객들이 북적댄다.
'아,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산길을 천천히 걸어가는데, 저만치 풀숲 가운데서 연미색 꽃 두 송이가 내 시선을 잡아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름도 모르는 8장의 큰 꽃잎이 숲 속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이렇게 우아한 들꽃이 피었건만 사람들이 눈길도 안 주다니....'
이 산에 피는 야생화는 왠만큼 아는데 그 꽃은 첨 보는 꽃이다.
꽃들도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경쟁자가 별로 없으니 작고 색깔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꽃들이 피는 5월이면 꽃들은 눈에 띄기 위해 색깔도 진하고 화려해지며, 꽃잎도 커진다.
수정을 하고 씨를 남기기 위해 또 얼마나 애를 쓰는지 인간은 잘 모른다.
민들레 씨앗 하나 꺾어들고 후~ 불어본다. 꼭 무슨 과학관 돔형 지붕같이 씨앗들이 둥글게 매달려 있다. 우주의 끝까지 닿을 수 있도록 염원을 모아 날려보낸다.
집에 와서 도종환 시인의 <꽃잎> 이라는 시를 읽었다. 오후에 산에서 본 연미색의 이름모를 꽃을 생각하며......
꽃잎
- 도종환-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다
피었다 저 혼자 지는
오늘 흙에 누운
저 꽃잎 때문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시작도 아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
아득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