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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여행하게 하소서..........


BY 뜨락 2001-08-31

지금 저녁 밥 대신(?) 새우깡을 먹고 있습니다.
근데요, 넘 맛있어요.
새우깡이 이렇게 맛있는줄 예전에 정말 몰랐어요.
이젠 저녁 바람이 제법 쌀쌀 합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의 끝자락에는 벌써 가을의 향기가 묻어 오구요,
귀뚜라미는 제 안방까지 들어와 가을을 알리고 있습니다.
방까지 들어온 귀뚜라미를 보고 제 딸아이는 폴짝 뛰어 침대위로 올라가서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겁이 많은 건지 철이 없는 건지.......
키는 저보다 훌쩍 크고 찌찌도 저보다 커지만,
언제 철이 들려는지.......
가게를 그만두고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 병원을 다녀오고, 그리곤
왼종일 뭘 하는지 하루가 후딱 가 버립니다.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원했지만 하지 못한 일,
가게 땜에 미루구 미뤘던 일,
가게를 그만두고 나면 꼭 한번은 여행을 해야지.....
맘먹었었는데.
또 다른 장사를 시작해야 하고 가게 수리는 한창이고 이러다 이번 가을도 또 그냥 보내 버릴것 같습니다.
아직도 소녀적 감상을 못 버린탓에 가을 꽃길을 걸으며 마냥 걷고 싶기도 하고,
끝없이 달리는 기차에다 몸을 싣고 어디론가 목적지없는 여행을 하고도 싶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또 희망사항에 그치려나 봅니다.
어제 식품 위생 교육이란걸 받았고 또 오늘은 반쯤 완성된 가게를 보고 왔습니다.
앞이 캄캄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해내야 할일입니다.


문득 그 해 가을이 생각납니다.
내가 많이 아팠던 그 가을은 다시 왔지만
그 해의 가을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던 그 해 가을은 아닙니다.
영화 같던 그 해의 가을은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벌써 몇년 전인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나를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
우린 서로 원했지만 날 원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내 남편,
지금 내 아이의 아빠는 그 사람과 내가 만나고 사랑한다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헤집고 들어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내가 다니는 어느길이든 그가 있었습니다.
그사람과 내가 만나고 있을때
그 카페에 와서는 그사람을 보고 하는 말,
"이 보세요, 숙이씨는 지금 내 아이를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당신, 포기하시요." 한다.
기가 막혀서.........
아니라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커피에 프림을 넣는 스푼이 떨리면서 탁자위에 하얗게 프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담배를 피워 물며 내게 물어왔습니다.
"믿지 않아도 되는 말이지?"
그 사람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습니다.
난 암 말도 하지 않았고 눈물만 글썽였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지금 내 남편의 부단한 노력(?)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날떠나게 만든 남편이 무지하게 미웠었습니다.
우리집 자취방앞에 무시로 와서는 자기 이름을 불러대고.....
못이겨 집 근처 체육 공원으로 나간 나는 남편의 손을 힘껏 물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좋답니다.
내 손을 꼭 잡은 그의 손이 뜨거웠고 그 사이로 떨어지는 남편의
눈물땜에 내 속 맘이 조금 풀렸나 봅니다.
그리고 결혼이란걸 했습니다.
남편한테 조금은 미안한 맘이 있습니다.
한번도 저의 사랑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고 더 이상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
가끔 내가 남편한테 말 합니다.
"우리 결혼 하게 될줄 알았으면 당신한테 좀 잘 해줄걸....."
그러면 남편은 웃으며 그럽니다.
"니 아마 벌 받을껄.........."
남편한테 미안 하지만 그 사람이 보고싶습니다, 가끔.
어쩌다 한번쯤 우연히라도 만나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만으로 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픈 사랑을 했던 그 해 가을도 이렇게 일찍 왔었습니다.
내일은 가까운 산사에라도 다녀와야겠습니다.
8월의 끝날입니다.
행복한 날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