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기어이 친정 엄마가 그 얘기를 꺼내었다. 눈물이 줄줄 쏟아진다.
"니 가게는 우얄끼고? 왜 가타부타 말이 없노?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데 당장 돈들일이 얼매나 많은데....."
가게를 정리하겠다고 맘먹고 혼자 밤마다 낑낑대다가 보름 전 부터 슬슬 정리에 들어갔다.
'이 불경기에 가게가 나갈까? 그 동안 들인 광고비랑 지난 겨울 그 추운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당장 뭘 먹고 살지.....'
뭘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자리라는게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 자꾸 가슴 한켠이 무너진다. 그 무너진 자리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삐질삐질 눈가로 새나온다.
돈도 돈이지만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어디서 힘을 얻지?
가방에 시집 한 권, 물 한 병 넣고 산으로 향한다. 햇살이 따갑다. 아스팔트 위엔 벌써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절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에 흙냄새, 나무들이 내뿜는 수향에 코가 시원하다. 일부러 계곡 가까이로 길을 잡아 걷는다. 계곡엔 빗물이 다 빠져나가고 작은 웅덩이에 날벌레들만 우글거린다.
바위에 앉았다. 인적도 없고, 온갖 새소리, 땅밑으로 흐르는 조용한 물소리만 들린다.
산자락으로 눈길을 돌리자 며칠전 보다 훨씬 더 성숙해진 나무들이 싱그런 초록잎들을 달고 서 있다.
'그래, 살아있다는건 이렇게 싱그러운걸...'
돈걱정, 빚걱정, 아이들 걱정, 외로움이 다 사라진다.
한 숨 돌리고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오솔길을 가릴듯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오색 연등이 나부낀다.
아름답다. 혼자라서 더 좋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도 시비걸지 않는 산길에 나는 또 앉았다.
' 아 이대로 사라져도 좋겠다.'
먼 훗날 나이가 더 먹었을 때 땅으로 꺼질듯 힘든 이 실존과 외로움의 순간을 기억할까?
작디작은 봄꽃들이 진 자리에 잎들이 무성하다. 생명있는 것들은 다 저렇게 살려고 아우성치는데, 산아래 세상살이에 왜 나는 이리도 서툰가?
내 마음에 작은 희망의 연등 하나 달기 위해 나는 오늘도 산에 올라갔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