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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날의 수채화..


BY 올리비아 2001-08-30

색도 없고 향기도 없는 비가 메마른 대지를 적신다.

오늘은 오전 일찍 집근처의 백화점에 다녀왔다.
잿빛 아파트도시에 잿빛날씨....
우산하나에 몸을 가리면서 셔틀버스를 타고,

늘 복잡하던 백화점은 오늘따라
비도 추적추적내리고 오전인지라 무척 한가해 보였다.

조용히 쇼핑을 하고 볼일을 다 마치고 혼자 집으로
가기위해 셔틀버스 타는곳으로 향했다.

차는 방금 떠났는지 아무도 없는 긴 막대벤치에
걸터 앉아 아무생각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와서 벤취에 앉는
인기척을 느껴 옆을 바라보니,

베낭을 메고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막대벤취에 앉으려 했다.

얼핏본 얼굴은 남자답지않게 무척 흰피부와 짙은 눈썹
금방 면도를 마친듯한 푸른턱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묘한 분위기가 압도했다.
학생같기도하고 예술분야에 있는사람같기도 하고..

갑자기 난 어느새 아줌마의 신분을 망각하고
잠시 여자가 되어버린듯한 설레임을 느껴본다.

기다리는 셔틀차를 보는척하며 그를 보려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남자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는 시선에 민망한 눈빛을 수습하고
애꿎게 내리는 비만 바라보았다.

축축한 대지와 옆남자의 담배연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서너칸 건너 앉은 그남자와 난 마치
커피광고의 한장면처럼 앉아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혼자만의 착각이었더라도
잠시의 설레임이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 내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현실의 내자신을 잊고
마치10년전으로 돌아간듯한 착각들이 잠시 우스워서
혼자 피식 웃어본다.

잊어버렸던 아득한 기억저편의 추억들이 스멀거린다.

비가 오면 친구들은 항상 나에게 반협박조로 당부한다.
"너 비와도 꼭 나와야돼..알았지?"
"알았다니까.." ㅎㅎ

난 비가오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왜그랬는지는 지금에와서 기억에 없지만 ..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없는 그 공간만이라도 없어야
비가 더 많이 내릴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괘변이라도
만들어 핑계를 댈껄 하는 아쉬움하나가 늘어난다.^^

게으른 청춘을 보내고 나름데로 바쁜 감정들로 여린
청춘들이 몸부림치던 그시절이 내게도 있었건만..

십몇년후 지금의 내모습은 유감스럽게도
가정주부라는 타이틀을 메달고 이런 주책스런 감정
자체도 허용될수도 없다는 신분의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쇼핑차는 정해진 시간에 약속이라도 한듯 빗길에 미끄러지듯히
들어오고 텅빈 쇼핑차안에 통로사이를 옆에 두고 앉았다.

애써 외면하고 비오는 창밖을 보며 가다가
내릴곳에 다가와 일어서니 그남자도 같은곳이었던지
함께 일어나며 다시또 마주보게 되었다.

왜 그렇게 깊이바라보는거야..맘 심란하게
시집간 누이를 닮았나..ㅎㅎ

처음본 모습보다는 다시 가까히서 보니 좀 실망이다.^^

그렇게 차에내려 우산을쓰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길을 가면서 내리는 빗속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잠시 느껴보았던 주책스런 이런 감정들이 잠시나마
혼자였었던 예전의 나를 느껴보게 하였고,

나이에 어울리지않은 그런 감정들은
내리는 빗방울이 푹파인 아스팔트의 고인물에
원을 그리고 사라져버리듯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가을비가 오늘
날 주책스런 아줌마로 만들어 놓는군..

괜히 내리는 비를 핑계삼아 웃어본다.

혼자 집으로 오면서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어
흥얼거리며 발길을 재촉했다.

~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듯 느껴지며♬~~~

집에가서 진한 커피한잔 마셔야겠다...

...가을비내리던 어느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