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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김봉두 영화를 보고


BY boresoo 2003-04-28


흰 눈밭의 학교 정경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났으나
내 기억은 너무 멀리 떠나 있었던 지라 쉽게 털고 일어 날 수가 없었다.

1960년대의 초등학교 시절
정말 까마득한 그 옛날에
호롱불 아래
엄마는 삯 바느질 하시느라 바늘 귀 잡으시고
꼬마가 읽는 책 구절 구절
"우리 애기 참 잘 읽는구나"다정한 목소리 아련한.........
초가집 아래, 방 한칸에 올망졸망 누운 네 남매 ..

들판에 메뚜기 잡아 소주병 가득 채우고
들뜬 가을 소풍 준비로
조잘대는 꼬마는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하이얀 밥에
메뚜기 볶음 반찬
그리고 어제 밭에서 거두어 온 고구마 삶은 것으로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하나 둘 !!
셋넷!!
신나는 소풍길에 올랐다.

애기봉이라는 전설을 가진 산밑 그늘에서
도시락을 펼치고
아이는 고구마와 메뚜기 반찬을 곁드린 선생님의 도시락을 부끄럽게
선생님 앞으로 가져 가는데 어느사이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줄지어 선 아이 들의 손에는
달걀로 장식 된 화려한 도시락과
담배가 쥐어져 있고
선생님께서는 그 담배에 이름을 써서 오라고 하신다.
꼬마는
줄에서 몰래 빠져 나오며
신이나서 연필로 꾹꾹 이름자 눌러 써서 선생님께 갖다 드리는 아이들만 부럽게 바라 보며

개울가 돌맹이 아래
짓 눌려 이그러진 고구마와 메뚜기 반찬의 도시락을
돌맹이 아래 꼭꼭 눌러 숨겼다.

꼬마는 아버지가 안계셨다.
아주 기억에도 없는 어린 나이에 꼬마의 아버지는 별나라에서
따로 집을 짓고 계셨다.

꼬마의 초등 6학년때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가던 때
초등학교 6학년 ..
그 시골에도 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야만 했다.
그 밤 공부는 담임 선생님께서 과외비를 따로 받으시고
아이들을 가르키셨는데

꼬마네집은 그런 호사를 할 수 없는 걸
아는 아이였다.
그렇게 부잣집 아이들은 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면 모두 좋은 성적을 받으니
선생님께서는 교실 자리 배치도 등수대로 앉혀 주셨다.

1등,뒤에 2등, 이렇게 등수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모두 밤 공부를 받는 아이 들이었는데 그 등수 속에 꼬마가 자리 잡고 앉게 되었다.
선생님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꼬마.
꼬마는 시험을 볼때도 선생님의 특별한 관리를 받아야 했다.
그 걸 안 꼬마는 아는 답을 일부러 틀리게 적어
다음 부터는 그 등수 안에 앉지 않았다.

그러나 꼬마는 다른 선생님의 큰 사랑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먹밥을 나눠 주던 시절
크고 작은 주먹밥의 크기 때문에
행여나 편애 하는 마음이 생기 실 까봐
눈을 감고 나눠 주시던 선생님!

그렇게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꼬마는
어른이 되어
어린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었을때 참다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값진 보석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 하며
그 쓸쓸 하던 유년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 하고
언제고 선생님을 뵙는 날
“선생님 감사 합니다.
어릴 적 그 꼬마가 이렇게 잘 자랐습니다 “하고 인사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워즈워드의 맑은 시 무지개를 생각하며
이세상에 모두가 진정한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참 교육이
어린 아이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세상을 그리워 하며
선생 김봉두와 함께 아이 들 앞에 떳떳 하기를 바래 보는 날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 뛰누나.

나어릴 때 그러하였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진 뒤에도 그러하리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컨대 내 생의 하루하루가 모두 순진한 경건으로 이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