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랬만에 딸아이와 한 밤을 지내게 되었다.
내가 키울것이 없을만큼 이미 다 커버려서 친구와 같은 느낌으로 만나곤 한다.
오후무렵 간단한 간식으로 출출함을 달랬었기 때문에 늦은 시간이 되니
배에서는 현찰을 달라고 아우성 다방 이다.
마침 내가 오기를 기다리던 딸아이는 엄마랑 꼭 같이 가서 먹고싶었던
레스토랑이 있었다며 야심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지갑을 챙겨 가지고 나선다.
딸 아이 말로는 그 많은 양에 놀라지 말것이며 ,
...내가 먹는 양에 놀라지나 말아라.
늦은시간인데도 꽉 차있는 손님에 놀라지 말며,
....놀랄일이냐? 배아플 일이지.
맛있는것에 놀라지 말며,
....맛없어도 잘 먹는다.
마지막 생 과일 쥬스에 놀라지 말라니
쥬스에 과일을 섞어줘도 안 놀랜다.
내가 놀랄일은 하나밖에 없다.
돈만 많이 주지 않으면, 하나도 놀라지 않는다.
날 얕보지 말라!
정말 오랫만에 김치지개 ,된장찌개가 아닌 ,
샹드리에 밑에서 오묘한 콧소리가 나는 외제 음악을 들으며
쌍칼질을하니,
마음은 부르조아가 되었다.
대화도 품격에 맞게 우아하고 세련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리오만은.
만나면 머리맞대고 낄낄 거리는걸로 시간이 모자라는
푼수 모녀는 갖은 우스운 소리를 하다
그아이에게는 아빠 이자 나에게는 웬수인,
박씨 아저씨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술을 애인 마냥 사랑하는 박씨는, 그 애인으로 인해서 가정에서는 바람잘날이 없었다.
사람이라도 되어야 머리채라도 끄들던지 하지,
앙큼시럽고 요사스런 그 것은, 여자 보다도 더 상대하기가 벅 찼다.
아이들은 어린나무 새 잎마냥 어리디 어릴때고.
버들가지 새순마냥 연약한 마누라는 ,
감당할수 없이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을 쓸어담기도 바쁠때였다.
어느날.
어슴프레하게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박씨가 죽자사자 사랑하는 애인냄새를 ,
여름날 모기약 차에서 연기나듯이 , 펄펄 풍기며 들어와서는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온천을 가잔다.
지금 같으면 가고싶은 박씨나 다녀오셔..
하면서 가비얍게 물리칠수도 있으런만,
안그래도 들어오지 않는 웬수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해서
토끼마냥,벌개진 눈을 하고있는 중에 "목간 "이라니 죽을 맛이었다.
자는애들 깨워서 담요로 둘둘 말아서 털털 거리는 중고 차에 태운다.
차가달리면 바람이 어느곳에선가 들어와 뼈가시리다.
매표소는 문도 열지 않았다.
목욕을 하고야 말겠다는 저 의지에 찬 박씨의 표정을 바라보며 ,
그냥 가자는 말은 꾸욱 뱃속에다 잡아넣는다.
드디어 1번 타자처럼 매표소를 지나 온천장에 입장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어리버리한 아이들을 앞세우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탈의실도 썰렁하고,물소리만 들리는 욕탕 안은 구석구석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것만 같아서, 부시부시한 아이들을 데리고 처녀입장하는 내마음은 이미 공포에 반은 질려있다.
이미 본전 생각은 저만치 달아나고 우짜든둥 빨리 나가야겠다는 확고한 결심에 후다닥 물만 뒤집어쓰고 나와서 새벽 바람을 쏘였던 기억이 있다.
박씨가 사랑하는 애인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때,
새벽 찬 바람에 얄궂은 꼴을 당했던 이 새댁은
무릎을 종종 맞대가며 따지고 또 따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얼굴 두꺼운 박씨는 자기도 가기 싫은 온천을 가족이 원해서 간거라면서 아주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으니.
이렇게 두꺼운 얼굴가죽이 세상에 또 있을까?
많다!
아주 많다!
무지하게 많다!
오리발 내놓는 일이 어찌나 많은지, 아이들은 아빠 얼굴 두껍다 고 얘기하고 마누라는 얼굴 가죽이 세겹이라고 씹어먹는다.
딸아이와 우아한 레스토랑에 앉아서 향기좋은 커피를 마시면서 옛날 얘기를 하고 있자니 웃움꽃이 만발이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별명을 하나 지어주기로 합의한후에 여러가지가 물망에 올랐지만,
단연 압권은 3중바닥 ,튼튼한 압력솥,
"쉐프라인 "이었다.
압력솥 김빠지는 모습은 ,
박씨 화나고 열날때 머리에서 김솟을때하고 똑같다.
어젯밤부터 박씨 아저씨 별명은" 쉐프라~박 "이 됐다.
어쩌다 흥분해서 18 ,18 을 외치기라도 하면 "시파~박 "이라고도 불러준다.
전화해서 통보하니 ,
금방 "시파~박"으로 돌변한다.
으 하하하...